정치권은 설 명절 밥상머리 민심이 여론에 영향을 많이 끼칠 것이라 보고 일종의 기회로 삼는다. 명절 때마다 이슈 잡기에 나서는 것도 여론의 장터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더 ‘설날 정치’ 효과는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명절 때 일가친척들과의 교류 자체가 줄어들어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의견을 모으는 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생업 등의 문제로 귀성 길에 오르지 않고 있다.
서울시에서 자취하는 A씨는(32세·여)는 설 연휴기간 동안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개인적인 휴식시간을 보낸다. A씨는 설 연휴 때 친인척과 정치 관련 논쟁을 펼치던 것도 다 옛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시골에 내려가 친척들과 뉴스를 보며 정치 얘기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들 시간 맞춰서 만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정치 얘기는 잘 꺼내지도 않는다”고 했다.
동탄시에 거주하는 C씨(28세·남)는 창원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지만 하루만 머물 예정이다. C씨는 “친척들은 만나지도 못하고 가족끼리만 시간을 보낼 것”이라며 “이직 준비를 위해 스터디 모임이 연휴에도 있어 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요즘은 명절에 만나더라도 일찍 헤어지는 추세이고 또래 친척들도 모두 개인 생업 문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성인남녀 10명 중 6명은 이번 설날에 귀성 계획이 없다. 한국 갤럽이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이동 계획’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약 59%는 ‘고향방문’과 ‘여행’ 모두 계획하지 않았다. 이중 18~29세와 30대 역시 10명 중 4명 이상이 설 연휴 이동계획이 없었다. 18~19세는 42%가 어떤 이동계획도 없다고 답변했고 30대의 46% 역시 같은 응답을 기록했다.
이같이 젊은 세대들이 ‘설날 정치’ 효과가 없는 이유는 생업 등의 문제로 가족 간의 유대, 교류 등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배경이 있다. 이에 명절을 계기로 젊은 세대가 정치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거나 생각이 바뀌는 등의 효과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또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설날 정치 효과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에는 전국 곳곳에 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모여 젊은 자녀가 부모나 나이 든 어른들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주고받았다. 현재는 전 연령층이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 환경이다. 이에 따라 세대 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 효과는 크지 않다. 이런 이유로 명절 연휴에 특별한 여론의 형성이나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20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오프라인 모임에서 정치적 문제를 새로 인식하는 계기를 맞이하는 등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본다”며 “설 전 후로 여론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지를 정리하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 실제로 세대 간의 교차라든지 지역 간의 교차 등을 통해 중앙 소식이 지방과 공유되는 등 전통적 의미는 많이 사라졌다. SNS도 발달 돼 있고 모임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람 간의 교류 속에서 인식의 재편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20~30대 대부분이 세대 간 교류가 적어지면 정치 무관심도 심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에 “20~30대는 생업 등의 문제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설날에 내려가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한 의견 교환과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