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주력산업에 한파가 불면서 한국의 제조업 체감 경기가 2년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불황의 긴 터널’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문턱과 금리는 올라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월 업황 BSI는 전월과 동일한 69를 기록했다. BSI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하락세를 이어 왔다.
BSI는 기업가가 현재 기업경영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전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전 산업BSI는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100을 넘은 적이 없다.
업황 BSI는 전월과 동일했지만, 제조업 BSI가 전월보다 3포인트(p) 하락한 63을 기록했다. 제조업BSI는 3개월 연속 내려가고 있는데, 2020년 7월(59) 이후 2년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가 부진한 건 반도체 수요 감소 영향이다. 전자·영상·통신장비와 기타 기계 장비 업황도 부진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건설·자동차·선박 등 전방산업 업황 둔화로 1차 금속의 하락 폭도 컸다.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4p, 1p 하락했고 수출기업(-5p)의 체감 경기도 내수기업(-1p)보다 나빠졌다.
반면 비제조업 BSI는 2p 올라가 73을 기록했다. 실내마스크 해제에 따른 소비심리 개선·고객사 수주 물량 증가 등의 영향을 받아 도소매업(+5p)의 상승 폭이 컸다.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인해 항공운송 매출액이 늘면서 운수창고업(+6p)도 올랐다.
이처럼 제조업을 중심으로 우울한 전망이 나오지만, 자금조달 부문에서도 당분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기업금융시장 전망’에 따르면 기업의 대출 수요 증가에도 은행의 대출 증가액은 지난해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국내 은행의 기업차주에 대한 대출태도는 예대율 규제 완화에 따른 대출 여력 확대, 금융기관 간 경쟁 심화 등으로 올해 1분기 다소 완화됐다. 하지만 기업 재무건전성 악화 등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 전반적으로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대출문턱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이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지며 우량기업 위주로 자금을 공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박찬우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 대출수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경기 둔화에 대비한 유동성 확보 노력,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애로 등으로 기업 대출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비 둔화,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한 국내경제의 1%대 성장, 신용위험 상승에 따른 은행권 여신건전성 관리 강화 등을 고려하면 기업대출 증가액은 줄어들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출문턱도 올라간다는 점 뿐 아니라 점차 금리가 높아지고 있어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이중고’를 겪게 하고 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상분은 지난해 1월 2.9%에서 올 2월 현재 5.6%로 2.7%p 오른 반면 같은기간 기준금리 인상폭 2.25%p(1.25%→3.5%)보다 높았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은행들이 대규모 공적자금으로 위기를 극복한 만큼, 지금처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힘들 때 금융권이 먼저 대출금리를 적극 인하하는 등 상생에 나서야 한다”며 “우리나라 은행도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국처럼 기업 직접 투자를 허용해 은행도 살고 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