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시트지' 정부지침 난립에 불안한 점주들..."탁상행정"

'편의점 시트지' 정부지침 난립에 불안한 점주들..."탁상행정"

복지부·국토부·경찰청 '시트지' 지침 제각각
담배광고 규제한다며 점주 안전에는 무대책
점주들 “고의 아니면 처벌서 제외해야”

기사승인 2023-03-03 16:25:14
편의점 불투명 시트지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편의점 점주들은 최근 불거진 각종 범죄를 두고 정책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담배 광고 규제에 따른 시트지 부착이 오히려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점주들의 답답함은 커지는 상황이다. 

외부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인 인천 계양구의 한 편의점.   사진=김한나 기자

정부, 점주 안전 문제 ‘뒷전’…법령 준수가 우선?

편의점 점주들은 불투명 시트지를 범죄 발생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편의점 시트지 부착은 정부의 금연 정책이 강화된 데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국민건강증진법과 청소년보호법 등을 근거로 '담배광고 외부 노출'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현행법 상 매장 외부에서 담배 광고가 보일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무분별한 담배 광고 노출이 청소년의 흡연 욕구를 자극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담배 광고 규제에 대한 시트지 부착을 두고 정부 부처의 의견은 엇갈린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어떻게든 담배 광고가 바깥에서 보이는 건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찰은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도시재생 과정에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를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시트지를 점포 내부가 밖에서 잘 보일 수 있도록 해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CPTED 기법은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대처방안 중 하나로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요인을 개선해 범죄기회를 감소시키는 환경설계기법을 뜻한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 측은 국토교통부의 권고 사항에 대해 전달받은게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건강증진법 상 광고가 보이면 안된다고 규정이 돼 있다. 노출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며 “복지부에서 시트지를 붙이라고 강제한 건 아니다. 당시 편의점산업협회와 한국담배협회 등에서 협의해서 내놓은 최종 방안이 불투명 시트지”라고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점주들 안전 문제에 대해선 “편의점 사고 등이 불거지면서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를 해 나가고 있다”며 “아직 시점이나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의견 수렴하는 것부터 준비 중인 단계”라고 밝혔다. 

점주들은 고의적인 광고 노출이 아닐 경우 처벌에서 제외해달라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편의점협회 관계자는 “(담배 광고 노출이) 의도하지 않아도 의도한 것처럼 비춰지는 게 문제다. 그것 만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데, 과도한 패널티라고 생각한다. 고의가 아니라면 예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시행령처럼 고의로 광고를 노출하는 게 아니고, 지나가다 광고가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점주들이 한달에 광고비로 몇 십 만원을 받는다. 아쉬운 데로 수익의 한 부분인데 단속에 걸릴 경우 몇 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너무 무거운 처벌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또 “밤에도 불빛으로 길을 비추는 편의점은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지키는 사회적 인프라 기능도 한다. 이처럼 시민 보호 역할도 수행하는데 불투명 시트지로 가리게 되면 이 기능을 수행하는 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투명 시트지 부착 역시 협회는 국민건강증진법이 통과되고 시행이 될 당시 시트지 대신 편광필름 등의 다른 대안이 있었지만 복지부 단속에 막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편의점협회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단속을 나온다고 하니 안 걸리려면 빨리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편광필름은 시공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시간이 촉박해 다양한 소재를 고를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외부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인 인천 계양구의 한 편의점.   사진=김한나 기자

편의점 점주들 ‘탁상행정’ 한 목소리, 실효성 없어

점주들은 담배 광고 규제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편의점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오히려 범죄 노출에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인천 계양구 효성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30대 점주 A씨는 “얼마 전 인근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난 이후로 많이 불안하다. 호신용품을 구비해 놓는다고 해도 사실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근무를 서다 강도가 들어와서 칼부림을 하면 답이 없는 것 아닌가. 이래저래 걱정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근의 편의점 점주 40대 B씨도 “담배 광고 규제는 정부의 탁상 행정에 불과하다. 외부에서 봤을 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안에서도 사람이 지나가는 형태만 보이고 얼굴도 안보인다. 범죄 노출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안팔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 8일 오후 계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30대 점주가 용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점주 살해 후 현금 20만원을 훔쳐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편의점 범죄 건수는 △2018년 1만3548건 △2019년 1만4355건 △2020년 1만4697건 △2021년 1만5489건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복지부의 담배 광고 규제에도 실제 청소년 흡연율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제17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근 한 달에 1일 이상 일반 담배를 흡연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4.5%로, 전년(4.4%)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었다.

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청소년 흡연 욕구를 줄이기 위한 규제이지만 실효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담배가 충동 구매하는 상품은 아니다. 흡연을 안하는 사람이 광고를 보고 한번 피워볼까란 생각을 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김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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