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해법안, DJ-오부치 계승과 달라...정치 이용 말아야” [쿡 인터뷰②] 

“尹 해법안, DJ-오부치 계승과 달라...정치 이용 말아야” [쿡 인터뷰②]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 인터뷰
“‘배상 구걸 안하겠다’ 김영삼안에서도 후퇴“
“日 사죄와 반성 없다면 계승 평가 안 돼”
“식민 피해 추모비 하나 없어...정치권 주목해야”
“정치적 이익, 역사 정의와 맞바꾸지 말라”

기사승인 2023-03-16 06:59:15
지난 10일 쿠키뉴스와 서울 혜화동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신철 소장.   사진=박효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과 17일 양일간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연다. 3·1절 기념식부터 전면적으로 등장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행보에 따른 결과물로서 어떠한 메시지가 도출될지 주목된다. 특히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따른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카드를 꺼낸 윤석열 정부에 대해 피해 당사자와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철회를 요구 중이다.

최근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없는데도 우리 정부가 먼저 한일관계 개선을 이유로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제시하면서 사실상의 면책 선언을 한 것에 대해 ‘굴욕 외교’라고 평가했다. 

제국주의에 맞서 대한독립을 외쳤던 3·1절 기념식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연상되는 기념사를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시기와 내용상 모두 적절치 않았다면서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과 최근의 국내 상황에 대해 역사학자 이신철 소장과 지난 10일 나눈 대담을 연이어 전한다.

다음은 이신철 소장과의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동원 문제 해법 발표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지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참 부도덕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아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가 더 이상 배상을 구걸하지 않겠다’ ‘우리 힘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윤 대통령의 정책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물론 그 한 발에 매우 다른, 그리고 치명적인 ‘면책’이라는 칼이 숨겨져 있어서 문제이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김영삼도 아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고 주장했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민주당정권에서 먼저 일본의 면책을 주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나쁜 꼼수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다른 점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뿐 아니라 ‘김영삼안’, ‘문희상안’ 모두 일본의 식민지·전쟁 책임을 면제하지 않았다. 단지 현재 풀지 못한 숙제를 나중으로 미룬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극단으로 가져가면 서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런 것들을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될 때까지 미뤄두자는 양국의 미래지향적 합의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화해정책, 평화정책을 일본 측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본질은 빼고 일부분만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조건’이란 무엇을 말하나
▷일본에 과거 침략행위에 대해 반성을 하는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선다든지 아니면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사과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식민지를 지배했던 가해국의 하나인 일본 내에서 사과요구가 사회적으로 분출하는 그런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 앞에서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역사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윤석열-기시다 선언’이 나올 걸로 예상된다. 꼭 담겨야 할 게 있다면
▷일본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 몇 가지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아베 담화 등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이들 담화를 모두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담화는 아베 담화라는 것이 문제다. 아베 담화는 그 이전 총리들의 사죄와 반성을 사실상 번복한 것이고 내각 결의까지 거쳤기 때문에 현재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만약 이번에 담화가 나온다면 기시다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자신의 입으로 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미래기금 같은 것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사실인정이 본질이다. 본질을 호도하면 안 된다. 그리고 역대 한일 정부간 대화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교육문제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후손들이 기억하고 세계에 알릴 방안을 양국이 함께 합의해야 한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석할 수 있는 합의는 절대 안 된다.

-그럼 이번에 진전이 있을 거라고 보는지
▷그렇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주할 기시다 정권은 스스로 아베 정권을 계승한다는 정치권력이다. 아베 정권이 지난 2015년 내놓은 담화는 앞서 설명한 무라야노·고노 담화에 담긴 내용들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내용이 본질이다. 아베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더 이상 사죄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세계 무대에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심지어 소녀상도 철거하라고 했다. 그런 아베 담화를 계승 발전시킨 게 현재의 기시다 정권이다. 

지난 10일 쿠키뉴스와 서울 혜화동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신철 소장.   사진=박효상 기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나
▷최근 독일의 어느 한 대학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기습 철거해버렸다는 언론보도를 봤다. 이번 굴욕 외교에 따라 한일관계 ‘개선’이 된다면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더욱 많이 벌어질 것이다. 
일본은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유네스코의 강한 시정 권고에도 강제노역 부분을 뺀 채 전시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피해국들의 노력을 계속 방해할 것이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과 약속해놓은 게 있어 전혀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연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윤석열 정부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의지는 결국 정치적 정략적 선전물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반일 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을 겨냥한 걸로 보이는데 역사학자의 시선에선 어떻게 보이나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만한 얘기다. 그동안 정치권이 반일 감정에 대한 정치적 선전 구호만 앞세웠기 때문이다. 야당도 한일 굴욕 외교 문제를 앞세워 이재명 대표 문제들로 핀치에 몰렸던 것을 뒤집을 기회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번을 계기로 정치적 이해관계, 이해득실이 아닌 진정한 해법을 찾을 때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 마지막 단계에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는 것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특별법으로 구제하기는 매우 어렵다. 앞서 말했듯 강제동원 피해자를 모두 구제하려면 최소 몇십조의 돈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여당에서는 피해자 1인당 1억씩 배상해주겠다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데, 실제 그럴 의사도 없고, 만약 그렇게 주장한다면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 국내 피해자들까지 확장시키면 그 돈은 결코 감당이 안 된다. 정부 발표 보도자료에도 강제동원 피해자를 약 78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하고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어떤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피해자 구제에 대한 실현 가능한 법안과 함께 식민주의 청산을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조차 일제 식민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한다. 이제야 강제 동원 피해자 규모가 몇백만이고, 그중 피해자로 정부가 인정한 사람이 수십만 명 수준이라는 정도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식민 피해당한 이들의 경제적인 손해가 얼마인지 등은 아예 집계조차 못 한다. 현재의 경제적 가치로 얼마의 손해를 입었는지 추정이라도 해야 한다. 일본이 직접 나서서 그런 것들을 조사하겠나. 우리 정부가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들어선 지 70년이 넘었지만 이런 것들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문제다. 정치권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역사에 기록해야 나중에 일본에게 역사적 책임이나 역사적 구성권이라도 물을 수 있지 않겠나.

-또 다른 현실의 문제는 
▷일제 식민 피해자나 그 유가족들과 만나보면 식민 지배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비 하나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가령 일본 정치인이, 아니면 일반인이라도 방한해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한다고 했을 때 어디 가서 해야 하나.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에 가서 사죄할 수밖에 없다. 용산 공원 같은 곳에 추모 공원을 만드는 방안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일본의 정치인들이 한국에 와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의미 없는 소모성 논쟁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진정성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끝으로 한일 문제에 대해 정치권에게 전하고픈 말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역사 정의를 맞바꾸지 말라고 꼭 당부하고 싶다.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울 자신이 없다면 역사가 평가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시라는 말씀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역사가 평가해야 할 한일 역사문제를 인기 영합 또는 특정 정치 목적 달성을 위해 단순한 이슈로 써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작 후속 대책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다. 이것은 여야를 가릴 것이 없기에 간곡히 당부드린다. 
그리고 한가지 눈앞에 닥친 위험을 언급하자면, 일본은 이번을 기회로 자신들의 군사적 영향력을 인도 태평양까지 확장하는 데 한국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 체제를 내세우며 독도 해상에서 공동 군사훈련을 늘려나갈 것이고,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희석시키려는 전략을 노골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높여 영토야욕을 채우려 할 위험성이 매우 큰 것이다. 정치권에서 장기 전략을 가지고 역사문제를 고민해 주기 바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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