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분담금 공개불가…“특별법이 면죄부” [가습기살균제, 그 후]

정부, 기업 분담금 공개불가…“특별법이 면죄부” [가습기살균제, 그 후]

피해자 4929명…기업들 추가 분담금 납부 중
“정부, 피해 인정 해놓고 책임은 안지고 있어”
해결 접점 못찾아…피해자들 원성만 높아져

기사승인 2023-05-11 06:00:19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흘렀다.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와 달라진 건 없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피해자 구제와 보상 등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아울러 피해 구제 재원에 필요한 가습기 살균제 추가 분담금 문제도 지속되고 있어 피해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장관 “추가 분담금 미납 시 법적 절차”


10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급여 등에 사용되는 사업자 분담금을 옥시레킷벤키저 등 4개 기업이 아직 내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환경부는 2017년 18개 기업에서 걷은 분담금 1250억원이 소진돼 가자 최근 같은 금액을 가습기살균제와 원료물질 사업자 23곳에 재부과하라고 통보했다. 이 중 19곳만 납부를 완료한 상태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에 따라 가해 기업들은 추가 분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환경부는 추가 분담금 조사와 관련해 “기업들이 추가로 얼마를 징수하겠다는건 위원회를 통해 의결돼 있는 상태"라며 “분담금 액수는 공개할 수 없고 해당 금액에 맞춰 절차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분담금 납부 기한은 이달 15일까지다. 한 장관은 분담금을 기한 내 미납할 경우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이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에는 분담금 미납 시 '30일 이상 기간'을 정해 독촉한 뒤 국세를 체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징수하도록 규정돼 있다. 분담금을 끝내 미납하면 자산을 압류하는 것도 가능하다.

분담금 비중은 옥시와 애경산업이 각각 54%, 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675억원을 다시 부과하게 된 옥시는 환경부에 이의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옥시 관계자는 “추가분담금 납부기한은 5월 15일로, 추가분담금 납부에 대해 검토 중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의 신청을 제기한 애경 측도 “이의 신청은 이미 기각됐으며, 분담금을 납부 중에 있다”고 전했다. 

옥시의 모회사인 영국 레킷이 지난 3월 공개한 2022년 연례보고서에는 “(한국) 환경부가 2022년 12월부터 추가분담금 부과를 검토해 2023년 2월 27일 한국지사에 (부과를) 통지했다”라고 적시됐다.

레킷은 연례보고서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으며 이와 관련해 7700만파운드(약 1284억원)를 적립해뒀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에서 레킷은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 때문에 폐질환을 앓는 피해자들에게 공개적, 개인적으로 지속해서 사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가습기살균제 피해분담금 부과 기업은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해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애경산업, 롯데쇼핑, 홈플러스, LG생활건강, 이마트, GS리테일 등이다.
 
옥시 등 4개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추가 분담금을 이미 부과했거나 납부 중인 상황이다. 이마트는 추가 분담금을 전액 납부했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분할 납부 중에 있다.

연합뉴스

사망자 늘어나는데…책임 회피 급급한 정부 

비단 기업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정부도 책임 회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피해자 구제는 정부의 공식 역학조사 이후 12년째 해결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피해구제특별법 제정에 따른 피해 인정과 급여 지급, 형사 재판 등이 진행됐지만 정작 피해자와 기업 간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피해 구제 신청자만 급격히 늘어났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총 7841명으로 이 중 지원 대상은 4971명(중복 70명 제외)이다. 

구제급여 지급 대상자로 인정되면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간병비, 장해급여, 장의비, 특별유족조위금, 특별장의비, 구제급여조정금 등 총 8가지 항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 8일 '제34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를 열고 94명을 포함한 394명에 구제급여 지급 및 피해등급 결정 등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구제급여 지급 대상자로 누적 4929명이 인정을 받는다. 진찰·검사비 지원 대상 54명, 긴급의료 지원 대상 58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의결된 결과를 토대로 구제급여 지급 등 피해자 구제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 글로벌에코넷

그렇지만 피해자들은 막대한 의료비로 생계 유지도 버거운 상황이다. 예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원성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는 “옥시나 애경 등 기업에 추가분담금 1250억을 거둬서 전체 피해자를 다 해결하겠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면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분담금도 사실상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2017년 특별법 만들면서 책임은 기업한테 있다고 법에 적시해 놓고 정부에선 책임을 회피한 상태에서 추가 분담금 액수 자체도 얼토당토 않은 범위 내에서 분담금을 걷었다"며 “그마저도 시일을 끌면서 어지간한 피해자는 병원비 한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놨다. 현재 5000명 가까이 피해가 인정됐다 하더라도 이 중 피해등급을 나눴을 때 등급 외 피해자가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데 따로 치료법이 없다. 요양생활 수당도 다 끊겼다”면서 “저같은 피해자들이 근로를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피해 인정은 해놓고 책임은 안지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도 정부도 믿을 수 없고 가해기업은 너무 사악하다. 정부는 특별법으로 빠져나가고 기업에는 면죄부 주는 셈”이라며 “정작 피해자들은 보상 한 푼도 못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요구는 하나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책임 회피가 아닌 진심어린 사과와 피해자들에게 합당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도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최근 성명을 통해 “십수 년간 질병과 싸우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대체 언제까지 정부와 기업의 외면과도 싸워야 하는가”라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가해기업들의 피해 보상안을 조정하고,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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