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러난 전세사기 유형을 보면 피해자가 잘 짜인 범죄에 휘말린 경우가 많다. 임대인이 원하는 금액으로 계약을 맺게 해주고 리베이트( ‘R’이라고 부르며 개당 100만원을 의미)를 나눠먹은 일당이 적발됐는데, 그 안엔 중개사·매수인·분양팀·은행원·감정평가사 등이 포함돼있다.
서울 화곡동에서 전셋집을 구한 A씨도 ‘R’ 50개짜리 전세사기 피해자다. 그가 관할 구청에 도움을 청했을 때 구청은 ‘계약서 상 문제없다’며 외면했고, 주택도시보증공사·국민신문고·다산콜센터·국토교통부·경찰도 도와주지 않았다. A씨 혼자서 모두 감당해야 했다.
A씨는 “계약한 집이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은 ‘깡통전세’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계약금을 돌려받으려고 잠도 못자고 싸워야 했다”며 “이게 과연 계약 경험이 적은 사회초년생이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계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만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어 “중개인도, 임대인도, 심지어 은행 상담원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개인 노력과 책임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고 호소했다.
전세사기를 두고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단순 임차인 부주의에 의해서만 비롯된 게 아니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를 낀 일당이 마음만 먹으면 당할 수 있음을 A씨 사례로 입증됐다. 전세 임차인이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세입자들
“임차인에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폭넓은 정보를 제공 하겠다”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했던 다짐이다. 정부는 이 일환으로 자가진단 안심앱을 출시했고 임차인에겐 선순위 권리관계 확인권한을 부여했다. 표준계약서엔 특약을 명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임차인은 그럼에도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관계자는 “너무나 많은 주택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세입자는 공인중개사로부터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받지 못 한다”라며 “의무 조항이 아닌 매매가격 확인을 비롯한 깡통전세 여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설명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 돼 온전히 세입자가 감당해야 하는 불안 그 자체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위반건축물 여부, 등록임대주택 여부, 등기부등본 등을 근거로 한 소유권과 권리관계 정보와 그에 따른 해석, 물건 하자 여부 등을 확인받을 수 있다. 이는 엄연히 의무사항이고 위반 시 영업정지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행하는 중개사가 드물고, 세입자가 직접 깡통전세 여부를 파악하려하면 계약을 받아내려고 회유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도 “(임차인이) 선순위채권을 확인하지 않아서, 잘못 계약해서 피해를 입은 건 10%도 안 된다”라며 “모든 국민이 등기부등본 볼 줄 알고, 권리분석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제도적,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국민 교육·에스크로 계좌 등 대안 제시
조직적인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대국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되돌려줄 수 있도록 은행 등 제3기관에 맡기는 ‘에스크로 계좌’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동건 소비자주권시민사회 팀장은 “아무래도 생애 최초이거나 (임대차 계약) 경험이 없는 세대를 대상으로 전세사기가 많고, 은행이나 중개사 결탁으로 이뤄진 사기도 있다”라며 “중요한 계약인 만큼 사기를 막기 위한 교육이 잘돼야 하는데 사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걸 잘 확인해야 한다. 어디에서든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도 “전세사기 가장 큰 원인은 임대차 3법과 임대사업 등록활성화 방안”이라며 “임대사업 목적이 월세 임대료를 받는 것인데, (사업자들이) 월세로 갭투자해서 주택 수만 늘렸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또 “임대차 3법으로 임대차 거주기간을 늘려준 게 오히려 독이 됐다”고도 했다.
그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에스크로 계좌도입과 △월세에 한한 임대사업자 등록 허가를 제시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