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제1야당 대표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 간 면담을 계기로 촉발한 ‘굴욕외교’ 논란 탓이다. 싱 대사의 개인 비리 의혹 보도까지 나오면서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성 접대, 돈 접대는 없었는지 조사해야 한다”라며 성토가 쏟아졌다.
한·중 갈등이 재점화한 발단은 지난 8일이었다. 싱 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은)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것 같은데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고압적·비외교적 언사를 쏟아냈다. 부처 국장급의 대사가 주재국의 제1야당 대표를 불러 놓고 협박성 언사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에 장호진 한국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외교사절 본분에 맞게 처신하라”고 강도 높게 항의했다. 이튿날 눙룽(農融)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정재호 주중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중·한관계 문제점이 어디 있는지 되돌아보라”며 불만을 표하며 맞섰다.
이 가운데 싱 대사가 국내 기업으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싱 대사는 지난달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울릉도에서 운영 중인 최고급 숙박 시설에 무료로 투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숙박시설은 ‘2인 연박 필수’ 조건으로 이용해야 하며, 1박에 최소 1000만원 상당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성토가 쏟아졌다.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등장했다. 아울러 싱에게 접대한 그룹의 부패 금전거래나 또 다른 접대의혹이 있는지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하루 1000만원짜리 접대가 성접대였는지도 유심히 살펴볼 생각”이라며 “관련 사실이 확인되면 본국에서 송환조치를 하든지 해임조치를 하든지 알아서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지금 이대로 싱 대사를 두고 한중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는 것은 미래의 한중관계를 위해 매우 불길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또 “갈수록 싱 대사가 촉발한 분열극으로 국민들의 반중감정이 커지고 있어서 걱정”이라며 “시민단체에서는 추방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제 싱 대사는 반한감정을 대표하는 중국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본국에서 그 심각성을 빨리 알아차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교 공방으로 인해 한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민들의 원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면서다. 지난 1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주사 아모레G는 전장 대비 7.11% 하락한 2만8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하락 폭을 8.10%까지 키우기도 했다. 더네이쳐홀딩스(-5.42%), LG생활건강(-3.89%), 호텔신라(-3.64%), 아모레퍼시픽(-3.26%), F&F홀딩스, 신세계(-1.28%) 등도 하락했다. GKL(-2.99%), 파라다이스(-1.83%),롯데관광개발(-0.85%) 등 카지노·여행 관련주들도 약세권에서 거래를 마쳤다.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싱 대상의 자질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에 따르면, 싱 대사는 다수의 한국 국회의원·행정 관료를 만난 자리에서도 자국의 지도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듣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한 민주당 의원은 “중국 대사관이 시진핑 주석을 험담하고 다니는 사람을 대사로 두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진핑 주석도 ‘맛이 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싱 대사의 ‘거친 입’이 입길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참사관으로 세 번째 서울 근무 때 당시 주한 중국대사에게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게 한국말로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라고 거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대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5월에는 중국 CCTV 인터뷰에서 ‘신시대 중국 외교’를 언급하면서 “친구는 좋은 술로 대접하되 늑대는 총으로 쏴야 한다”고 발언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기조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랑외교를 펼치는 중국 대사들에 대한 추방 사례는 세계 각국에서 포착 가능하다. 최근 캐나다 정부는 자국 정치인 사찰 논란이 있던 중국 외교관을 추방했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은 지난달 8일 성명을 내고 “자국의 내정에 대한 타국의 어떤 간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캐나다 주재 외교관들에게 이런 행동에 가담하면 본국으로 보낼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와 관영 매체는 연일 옹호 태세를 취하고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관련 질문에 “싱하이밍 대사가 한국 각계 인사와 광범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직책이며, 목적은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촉진하며 중·한 관계의 발전을 수호·추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영 매체도 싱 대사를 두둔하며 협박성 주장을 내놨다. 국수주의 성향의 환구시보가 발행하는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같은 날 칼럼을 싣고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한 싱 대사의 말은 맞다”며 “그의 발언은 한국의 도발적 입장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친중’ 논란에 휩싸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대표적인 친중 논란은 2017년 12월 베이징대 연설이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한국은 ‘작은 나라’라 칭했다. 중국 국빈방문 중 벌어진 ‘혼밥’ 의전과 청와대 기자단 폭행사건 등으로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후 ‘사드(THAAD) 3불’ 시비에 휘말리는 등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한복 문화 찬탈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한 여당 고위관계자는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 한국을 마치 공산당처럼 생각하는 건가”라며 “‘혼밥’ 하고 다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저질 외교’ 혹은 사대 조공외교로 중국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다닌 이재명 대표처럼 대한민국을 생각하다가는 어떻게 망신을 당하는지 한번 보게 될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