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 뒤 서울백병원 82년 역사 막 내린다 [르포]

8주 뒤 서울백병원 82년 역사 막 내린다 [르포]

기사승인 2023-07-11 06:00:31
10일 서울백병원 본관 앞에 붙은 진료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 그 위로는 ‘오늘도 내일도 정상 진료’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진료 종료로 인해 환자 및 보호자분들에게 염려와 불편을 드리게 돼 죄송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환자분들 진료에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입구에 ‘진료 종료’를 알리는 글이 붙었다. 안내문 위로는 ‘오늘도 내일도 정상 진료’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다음 달 말, 운영 마감을 앞둔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지난 7일 서울백병원 측은 “각 부속병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8월31일까지 환자 진료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이사회에서 서울백병원 폐원을 결정한 바 있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설립된 서울백병원은 현재까지 서울 중구의 유일한 대학병원으로 기능해왔다.

“40년 넘게 다닌 병원, 나를 가장 잘 아는데”…혼란·우려 뒤섞인 병원 안팎

진료 종료 날짜가 확정되고 처음 맞은 평일인 지난 10일 오전 기자가 찾은 서울백병원의 풍경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보안요원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들어오는 방문객에게 마스크를 써줄 것을 당부했고, 병원 로비 접수대는 환자들로 붐볐다. 원내에서 폐원 철회를 촉구하는 직원들의 피케팅 시위도 없었다. 외래, 응급실, 입원 등 일체의 모든 환자 진료를 중단하고 사실상 82년 역사의 막이 내리기까지 8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었다. 환자, 직원 할 것 없이 혼란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

10일 서울백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30세부터 50여년째 서울백병원을 찾고 있다는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병옥(가명·82) 씨는 폐원 소식에 “불안하다. 청천병력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 병원이 나에 대해 제일 잘 아는데 40년 넘게 다닌 병원 말고 이제 어디로 가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암환자인 남편을 데리고 충청도에서 10년째 서울백병원을 찾고 있다는 이명자(가명·68) 씨도 “어제 폐원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신경 쓰였다”고 했다. 이 씨는 충청도의 유명 병원들 대신 서울백병원 진료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인지도가 높고 서울백병원에서 진료 본 주변 사람들이 다 칭찬하니 오게 됐다”며 “실제 와서 진료를 받아보니 정말 환자 잘 보고 의사와 간호사 모두 친절해 믿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문제없이 잘 운영된다고 생각했던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허망한 심정”이라며 “서울백병원이 문을 닫으면 일산백병원으로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오후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병원 정문 앞에서 직원 3명이 인제학원을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나섰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진료 종료 시기가 너무 빠르다. 병원은 환자들에게 진료 종료일을 안내하고 진료 및 각종 서류발급 관련 사항 등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누가 어떻게 전달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병동 간호사 B씨는 “병원은 ‘환자 전원’이나 ‘직원 고용승계’ 모두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좋게 포장해 말하고 있는데 직원들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며 “내부에서 직원들 대다수를 부산병원(부산백병원·해운대백병원)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나중에 일방적 통보식으로 발령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된다”고 우려했다. 

10일 서울백병원 정문 앞에서 직원들이 재단본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진료 종료로 불안한 것은 병원 내부뿐만이 아니었다. 병원 인근 상인과 약사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병원 맞은편 약국 C약사는 “약국에 오는 환자 대부분은 이곳 주민들이고 서울백병원을 오래 다닌 환자가 많은데 병원이 갑자기 문 닫는다고 하니까 약국에 와서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경우가 잇따른다”며 “우리도 폐원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고 답답해했다.

병원 인근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상인 D씨는 “외래진료 마치고 점심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꽤 있는데 병원 문을 닫게 되면 가게 수익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인·병원장 모두 입 닫았다…막무가내 진료 종료 통보”

“몸담고 있는 병원의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듣는다는 게 과연 상식적인 일인가.” 

이날 오전 일주일간 라오스로 해외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기자와 마주앉은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은 “진료 종료일이 결정날 때까지 교수들에게 법인도, 병원장도 입을 닫았다. 한 언론사 기자가 보여준 병원 측 보도자료에 ‘내부 논의를 거쳐 진료 종료를 결정했다’는 말만 찍혀 있을 뿐이었다”며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분통을 토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지난 6월20일 법인 이사회 폐원 의결 이후 6월29일, 7월3일, 7월6일 세 차례에 걸쳐 학교 법인과 병원 운영진, 교수협의회, 일반노조가 참여하는 협의체 모임이 이뤄졌다. 네 번째 모임부터는 회의 시간을 분배해 병원 회생 방안과 피해 최소화 방안을 함께 논의하기로 약속했는데, 세 번째 모임 다음 날인 지난 7일 법인이 병원에 공문을 보내 8월31일까지 진료를 종료할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설명이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부산·상계·일산 백병원지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백병원 앞에서 폐원 철회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조 교수는 진료 종료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교수는 “환자들은 새로운 병원, 새로운 의사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 많은 환자가 담당 전문의가 병원을 옮기면 거리가 있더라도 그 병원으로 따라가기를 원한다”며 “그런데 아직 교수들이 옮겨갈 병원은 정해지지 않았다. 담당 교수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 따라갈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인턴 수련 공백, 임상연구 타 병원 이관, 인근 사업체 직원 건강검진 의뢰 취소 등 폐원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직원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법인은 의료기관을 경영할 능력이 전혀 없다. 사기업처럼 수지타산에 맞춰 인력감축과 구조조정만을 반복할 뿐이다”라며 “법인은 폐원으로 인한 교직원과 환자, 지역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그 어떤 방안도 세워놓지 않고 막무가내로 진료 종료를 통보했다. 우리 교수들은 법인의 일방적인 진료 종료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측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지 매각에 따른 수익 창출에 관해 선을 그었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폐원은 전체 의료원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추후 절차가 마무리되면 별도 논의를 거쳐 폐원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어떠한 형태로 운영하게 되든 그로부터 창출되는 재원은 전부 형제 백병원에 재투자해 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 더 좋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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