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신약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연 매출 10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이름을 올린 곳도 있다. 국내 흥행에 힘입어 여러 제약사가 해외에서도 이름값을 높이며 세계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업계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신약 개발과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제약업 역사는 길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개발(R&D) 기간은 짧았고 규제와 정책에 가로막혀 제대로 날개를 펼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업계는 약품 판매 이익을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블록버스터 신약 다수 등극
26일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과 업계 등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용 허가를 받은 국산 신약은 총 36개다. 이 중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이름을 올린 의약품도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다수의 제품군이 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0년 9월 허가돼 15호 국산 신약으로 이름을 올린 보령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성분명 피마사르탄)는 지난해 국산 신약 매출 1위에 등극했다. 단일 품목의 매출 실적은 타제품 대비 다소 부족했지만, 카나브 기반 약물들의 매출이 합쳐져 1140억원의 연 매출을 달성했다.
LG화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성분명 제미글립틴) 역시 지난해 1044억원의 실적을 보였다. 제미글로는 2012년 6월 허가돼 19호 국산 신약으로 등록됐다.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며 202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국산 30호 신약이자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P-CAB)’ 계열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인 케이캡의 2021년 전체 처방 실적은 1107억원으로 지난해엔 1321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원외 처방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1억원(17.6%) 증가한 741억원으로 조사됐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케이캡은 국내 P-CAB 계열 제품 중 가장 많은 5가지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용량과 제형을 다양화해 여러 환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외 학술저널과 심포지엄을 통해 케이캡 연구 내용을 홍보함으로써 P-CAB계열 대표 제품으로 위상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잇따라 신약을 내놓는 곳도 있다. 2001년 5월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제인 ‘이지에프외용액’과 2021년 12월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인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를 각각 신약 2호와 34호로 등록한 대웅제약은 지난해 11월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를 36호 신약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웅제약은 엔블로를 세계시장에 내놓기 위해 여러 국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작년 11월 국내 허가 이후 올해 2월 브라질, 멕시코와 파트너링 계약이 체결됐다”며 “현재 러시아, 중동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사업 기회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해외 연구자가 엔블로에 관한 메타리뷰 논문을 발표했다”며 “엔블로에 대한 학술적·상업적 측면에서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얻은 이익 R&D 재투자 구조 돼야”
업계는 이처럼 국산 신약이 괄목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전한다. 국내 블록버스터 신약을 넘어 세계적 블록버스터가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업의 역사는 길지만 R&D 역사는 길지 않다. R&D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30여 년에 불과하다”며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개발, 오픈 이노베이션, 글로벌 진출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에 와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산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약가정책을 시행하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집중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정책을 통해 신약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제약바이오기업이 얻은 이익을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향후 우리나라가 제약바이오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약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중요한 시점에서 산업계의 노력은 물론 정부가 앞장서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향후 산업계가 더 공격적인 투자와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블록버스터 신약을 출시하고, 정부의 과감하고 실질적인 산업 육성정책이 뒷받침된다면 제약바이오산업이 ‘퀀텀 점프’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반드시 빅파마만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중소기업도 희귀질환, 면역항암제, 항체 기반 치료제 등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식약처 “브릿지 프로젝트, GPS 정책 추진…전주기 지원”
정부는 우수한 혁신 신약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품화 전주기를 지원하는 ‘브릿지 프로젝트(Bridge Project)’와 ‘GPS(Global Leader, Partner, Supporter) 정책’을 들며 신약 개발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식약처 관계자는 “브릿지 프로젝트는 연구·기획 단계부터 제품의 분류와 평가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고, 제품화 단계에서는 분야별 규제 전문가가 제품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며 “시장 진입 단계에서는 혁신 제품이 신속하게 상용화될 수 있도록 혁신 제품 신속심사 제도인 ‘GIFT(Global Innovative product on Fast Track)’와 글로벌 기준을 우선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GPS 정책은 혁신 신약의 글로벌 진출 장벽을 낮추고, 시장 진출을 앞당길 수 있도록 돕는 ‘수출 길잡이’ 정책”이라며 “국가 간 규제 장벽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고, 민관 수출지원 협의체를 운영하며 수출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