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파티 갈 친구 구해요” 다시 유행하는 역할 대행

“같이 파티 갈 친구 구해요” 다시 유행하는 역할 대행

기사승인 2023-07-30 06:05:02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멋진 친구가 되어 드립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역할 대행 서비스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역할 대행 서비스는 애인, 하객, 친구 등이 필요한 상황에 누군가를 고용해 역할을 대신 해주는 일을 뜻한다. 비용은 3시간에 5만원부터 1시간에 1만원까지 다양하다. 한 역할 대행 구인 사이트는 예쁜 친구, 멋진 친구 대행부터 부모 역할, 녹색어머니 역할 등 다양한 역할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힘든 전화 대신 해주기, 이성문제 스토리텔링 등 독특한 서비스도 눈에 띈다.

청년들은 역할 대행 서비스를 재미와 돈을 함께 잡을 수 있는 괜찮은 아르바이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윤모(27·직장인)씨는 “요즘 SNS에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 구인 글이 자주 올라오는 걸 봤다”라며 “신기하다. 한번 부업으로 해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29일 SNS에 ‘역할 대행’ 해시태그를 검색했더니 구인·구직 관련 게시글이 1000개 이상 나왔다. 예쁜 친구 대행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는 한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공감과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대행 알바 해볼까”라며 관심을 가지거나, “(왜 유행인지) 잘 모르겠다”며 낯설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직접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해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해봤다. 두 시간에 사례금 2만원으로 ‘카페 동행할 친구 대행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당장 아르바이트 가능한 5㎞ 이내 구직자만 90명에 달했다. 1분 만에 첫 지원자가 나타났고, 5분 동안 총 5명의 지원자가 문의를 해왔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에겐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 부업으로 할 수 있어서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전모(24·대학생)씨는 “대학생이라 방학 때만 가능한 단기 알바를 구하고 싶었다”며 “내 일정에 맞춰 가능한 시간대에 일을 구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한 역할 대행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홍보글. 다양한 분야의 역할 대행 구인 게시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 역할 대행 서비스가 유행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보급과 함께 하객, 애인부터 숙제나 심부름 등을 대신해주는 역할 대행 서비스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금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배달, 쇼핑 대행 서비스도 등장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시간과 삶의 질을 중시하면서 각종 업무 대행 서비스가 늘고 있다”며 “소비 수준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쇼핑이나 기저귀, 죽 배달 등을 대행해주는 서비스 수요가 높다”고 했다. 청년들 관심도 높았다. 2007년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구직자 377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48.4%가 ‘기회가 된다면 역할 대행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최근엔 역할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양해졌다. 온라인 홈페이지는 물론, 심부름 애플리케이션과 중고 거래 사이트, 각종 SNS 등을 통해 역할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 단순히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넘어 대화하고 파티에 함께 갈 친구를 찾는 등 소통과 관련된 수요가 늘어난 분위기다.

일본에서도 소비자 수요에 따라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가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재팬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퇴사 대행 서비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퇴사 대행은 근로자 본인을 대신해 변호사나 대행업체 직원 등 제3자가 직장에 퇴직 의사를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한 퇴사 대행 서비스 업체는 “이제 이런 직장과는 안녕”이란 제목의 포스터로 홍보하고 있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역할 대행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원인이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비용이 많이 드는 현실에 있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과거에 비해 이성과의 만남 등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며 “(역할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간을 단순화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역할 대행 서비스 이용자들에 대해 “장기적이고 책임감 있는 관계를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라며 “서로가 부담을 주지 않는 임시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유형”이라고 분석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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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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