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만에 진짜 친구’… 친구 역할 대행 [해봤더니]

‘10분 만에 진짜 친구’… 친구 역할 대행 [해봤더니]

기사승인 2023-08-02 06:00:17
지난달 26일 한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난 친구와 찍은 인증샷.   사진=이예솔 기자

이런 걸 누가 해. 친구가 공유한 ‘예쁜 친구 대행 아르바이트’ SNS 게시글을 보고 든 생각이다. ‘친구비를 지불하라’는 장난 섞인 문구도 적혀 있었다. 게시글에 달린 공감과 댓글 수는 장난이 아니었다. 20~30대로 보이는 수많은 청년들은 “대행 알바 한 번 해 볼까”라며 흥미롭게 바라봤다. 200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던 역할 대행 서비스는 어떻게 시간을 넘어 지금 청년들에게 닿은 걸까. 호기심이 피어났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런 걸 누가 해’의 ‘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직접 친구를 찾아 나섰다.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한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에 ‘카페 동행해 줄 멋진 친구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시간은 4시간 뒤 홍대입구역. 다양한 역할 대행 구인·구직 플랫폼 중 등록 절차가 쉽고, 심사 기간이 짧은 앱을 골랐다. 앱 내 역할 대행 거래 시세에 맞춰 사례금은 두 시간에 2만원으로 제시했다. 친구나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는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는 구매 대행이나 연기를 해야 하는 하객 대행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지원자가 없으면 어떡하지. 예상은 빗나갔다. 앱을 통해 2만원을 결제하자 5분 만에 최대 지원자 5명이 마감됐다. 비용은 앱에서 선 결제하면 이틀 뒤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되는 방식이다. 지원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지원자들은 “케이크 잘 먹습니다”, “친구 대행 많이 해봤습니다” 등 메시지를 보내 선택해달라고 어필했다. 그중 자기소개를 가장 길게 한 20대 청년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와 친구를 하기로 마음먹고, 앱 내 대화방을 통해 만날 시간과 구체적인 장소를 정했다.

2만원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난 심부름 요청서.


같은 날 오후 2시. 약속 장소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이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손에 땀이 맺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적막이 흐르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과 괜히 기대되는 묘한 설렘이 교차했다.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과 눈이 3초 정도 마주쳤다. “아?”하고 인사했다. 어색한 미소는 잠시였다. “언제 왔어? 케이크 먹으러 갈까”라고 태어나서 처음 본 청년이 쭈뼛거리며 말을 건넸다. 거리에서 우릴 본 사람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친한 친구 사이로 생각했을 것 같다. 케이크를 먹으러 가려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친구가 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오늘 하루 어땠냐”는 그의 물음으로 시작한 대화는 어색함과 억지스러움이 가득했다. 한 번 대화를 나눈 뒤 시멘트처럼 서로의 입이 굳어갔다. ‘가장 재밌었던 여행지’, ‘요즘 읽고 있는 책’, ‘좋아하는 노래 장르’, ‘운동’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팝송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가 능숙하게 좋은 곡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감대를 찾았다. 플레이리스트도 풍성해졌다. ‘진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었다. 어느새 신나서 ‘MBTI가 뭐냐’는 등의 질문을 던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색함이 사라지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서로 속 깊은 고민을 쏟아내기도 했다. 답도 없는 고민에도 친구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친구란 기억은 점점 흐려졌다.

24살 대학생인 친구는 1시간 반을 달려 이곳에 왔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만 있다면 이동 거리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친구는 “친구 대행 아르바이트를 셀 수 없이 많이 해봤다”며 “일정에 맞춰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아르바이트가 구해지지 않아서’ ‘단기로 할 수 있다는 점’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어서’ 등 여러 가지였다.

지난달 26일 한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친구와 찍은 사진.   사진=이예솔 기자

완벽한 친구가 되기 위한 준비도 필수다. 친구는 관련 업종에서 일한 적도,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내성적인 편이었다. 그는 “성격의 단점을 바꾸기 위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며 “보통 친구 대행을 구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내성적인 분들이 많았다”고 알려줬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 전 ‘여행 경험’이나 ‘좋아하는 책과 음악’ 등 대화 아이템을 수집한다. 여러 분야의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가면 그중 하나는 고용주 취향에 맞는다고 했다. 물론 고충도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에 범죄나 사기 등에 노출되기 쉽다. 짧은 시간 동안 고액의 돈을 벌 수 있는 점은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는 큰 이유다.

예상 밖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던 편견이 깨졌다. 서비스 이용 전엔 낯선 사람과 친한 척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시간은 눈 깜박하는 사이 지나갔다. 여느 친구처럼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다. 어색할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친구와 나는 가까워졌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익숙한 일상을 넘어, 낯선 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고민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친구’로 규정된 사람을 만나니 오히려 편했다.

요즘 청년들이 역할 대행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저 옆에 있어줄 누군가, 가만히 내 얘기에 끄덕여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친구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한 번 더 이용해 볼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내 친구들과 만난 첫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한때는 나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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