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지켜줄 ‘호신용 스프레이’, 안정·성능 검사 없다

날 지켜줄 ‘호신용 스프레이’, 안정·성능 검사 없다

기사승인 2023-08-17 06:00:13
게티이미지뱅크

‘묻지마 범죄’가 연달아 일어나며 호신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휴대와 사용이 쉬운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하고 선물하는 일이 많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여러 온라인 쇼핑몰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검색하면 스프레이의 효과와 견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네티즌은 어느 호신용 스프레이 판매글 후기에 “화끈함 같은 효과가 없었다”며 “냄새 맡아 보니 고추기름 냄새가 났다. 실전 상황이었으면 아찔할 뻔했다”고 적었다. 또 작고 예쁜 디자인을 강조한 호신용 스프레이 판매글엔 “분사력은 ‘찍’ 나가거나 몇 방울 떨어진다. 잘 눌러지지 않아 손가락에 다 묻는다. 범인에게 사용하기 전에 제압당할 듯”, “액체가 샌다”는 후기가 달렸다.

호신용품 후기. 온라인 쇼핑몰 캡처


호신용 스프레이의 품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품질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먹거나 치료를 위한 목적이 아니기에 식품의약처 관리 대상이 아니다. 총포 관련 법을 담당하는 경찰청 역시 “압축가스 힘을 사용하는 분사기만 법 적용 대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보통 호신용 스프레이는 사람이 누르는 압력으로 액체가 분사되기에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공산품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안정성 검증이나 성능 검사 등을 진행하는 국가기술표준원에도 문의했으나 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호신용 스프레이는 제품 기준 등을 규정한 한국산업표준(KS)이나 내구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KC인증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는 인증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호신용 스프레이는 어디에서도 안전성이나 성능을 보장받지 못한,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 결과 호신용 스프레이 안에 든 액체 제조 방법이나 분사 횟수, 발사 거리 등이 제품마다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들은 제조·판매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성능 검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조사의 자체 검증을 신뢰하긴 힘들다. 호신용품 판매업자 A씨는 “얼굴에 뿌려볼 수 없으니 손등에 뿌려볼 뿐”이라며 “정부에서 정한 제도가 있는 게 아니라, 이마저도 안 하는 곳들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매업자 B씨 역시 “제품 성능 같은 설명은 제조사에서 말해주는 대로 쓴다”고 설명했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C씨도 “저가 용기에 검증되지 않은 용액을 담아서 파는 곳들이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경찰특공대원이 순찰을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사진=임형택 기자

무차별 범죄에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시민들은 성능이 의심돼도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하는 분위기다. 유모(32)씨는 “효과는 불명확하고 제품 디자인 등만 강조하는 광고가 대다수”라며 “범죄가 계속 일어나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스프레이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류모(27)씨 역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호신용 스프레이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영상이나 후기를 보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켜야 하는 품질 기준이나 제품 규격이 없으면 호신용 스프레이의 품질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호신용품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관심을 갖는 제품이 아니다”라며 “강력사건들에 의해 주목받고 또 사라지다보니 품질 검증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판매업자 A씨는 “마진을 위해 (호신용품을) 반짝 만들고 사라지는 회사들도 많다”고 전했다.

성능이 보장되지 않은 호신용 스프레이가 긴급 상황에서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도망갈 시간을 소모하거나 상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호신용품을 사용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사용자는 더 당황할 수 있다”며 “상대방 입장에서는 반격을 당했다고 생각해 더 강한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유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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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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