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다니겠어요” 범죄 현장 된 공원에 시민 불안감↑

“혼자 못 다니겠어요” 범죄 현장 된 공원에 시민 불안감↑

기사승인 2023-08-18 18:25:17
조명 바로 아래 길 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려운 저녁 산책로.   사진=유채리 기자

한낮 공원에서 성폭행 범죄가 발생하며 일상 속 안전한 공간이었던 도심 공원에 대한 시민들 불안이 커지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신림동 한 공원과 연결된 야산 등산로에서 최모(30)씨가 피해자를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현장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중태에 빠졌고, 경찰은 18일 최씨에게 강간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순찰을 강화하는 등 범죄 예방에 온 힘을 다하라고 주문했고,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현장을 찾아 방범시설을 확인하고 지능형 CCTV를 서둘러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대낮에 안전하다고 생각한 도심 내 공원에서 강력범죄가 일어나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중국에서 한국에 온 지 2년 된 김모(18)씨는 “낮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놀랐다”라며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산책하러 공원에 간다. 앞으로 혼자 다닐 때, 더 신경 쓰일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잘 가던 등산도 벌벌 떨며 공포스럽게 다녀야 할 것 같다”, “대낮에도 마음대로 못 다니겠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 서대문구 한 공원에 나무와 수풀이 많아 전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사진=유채리 기자

17~18일 직접 둘러본 공원·둘레길은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18일 오후 1시쯤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한 공원은 둘레길과 연결된 근린시설로 나무와 수풀이 많은 곳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CCTV를 설치해도 가려진 곳까지 관리·감독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특정할 만한 지형·지물이 별로 없어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현 위치를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또 낮엔 사람이 적어서 걷다 보면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둘레길 성폭행 사건은 주변에 지나가던 시민이 살려달라는 피해자의 소리를 듣고 신고했지만, 아무도 없으면 그마저 어려워보였다.

17일 오후 7시쯤 방문한 서울 은평구 한 공원은 어두운 것이 문제였다. 모든 산책로에 조명이 설치된 게 아니라 앞쪽에 사람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로등이 있어도 길만 비춰서 주변을 더 자주 둘러보게 됐다. 가로등 때문에 길 밖의 공간이 더 어두워 주변에 있는 비상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서울 은평구 한 공원 계단 위쪽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유채리 기자

시민 안전을 고려한 공원 방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공원을 설계할 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고민은 했겠지만, 안전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을 수 있다”며 “공원·둘레길에 대한 지형적 특성을 이해하고 계단, 언덕 등 기본 시설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진 경상국립대 건축학과 교수 역시 이미 존재하는 공원들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한동안 둘레길, 올레길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라며 “수목 관리나 환경 정비가 잘 되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묻지마 범죄’라고 하지만, 범행 전 취약한 곳을 파악해 계획을 세우기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전에도 공원이나 올레·둘레길에서 강력범죄가 발생한 적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에는 한 초등학생이 인천 한 아파트 단지에서 200여m 떨어진 공원에서 실종된 이후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 2013년 제주 올레길에서도 각각 50대와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있었다.

강 교수는 공원이나 둘레길 등에 대한 환경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둘레길 등에서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대책을 내놓지만, 전반적인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범죄는 한 건이라도 발생하지 않는 게 맞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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