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폐암·후두암 인과관계”…건보공단 담배 소송 향방은

“흡연과 폐암·후두암 인과관계”…건보공단 담배 소송 향방은

건보공단, ‘담배 소송 세미나’에서 재판부 주문 뒷받침 연구 결과 발표
“폐암 잠복기 최대 30년, 과거 흡연환경 탓에 정확한 정보 전달 부족”
건보공단, 소송 2심 칼 갈아…“부족한 점 철저히 살피고 새 증거 마련”

기사승인 2023-09-01 06:00:21
지난달 3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23년 담배 소송 세미나’를 개최하고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담배에 의한 치료와 간병에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장애로 인한 간접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홍윤철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

“흡연자들에게 건강상의 피해를 입히고, 가족에게 슬픔을 안기고,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묻는 그날까지 국립암센터가 함께하겠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학계 등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지난 2014년부터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담배와 암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고 담배 회사들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1심에서 고배를 마신 건보공단이 2심에서 판결을 뒤집을 수 있을지 소송 향방이 주목된다.

“담배 회사, 발암물질 제조·판매한 책임지게 해야”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흡연자 중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10년간 지급한 공단부담금 533억원에 대한 배상을 담배 회사들(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0년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건보공단은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가 확인된 연구 결과들이 있고, 담배 회사들이 제품 제조과정에서 위험성을 줄이는 조치와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한 발병 가능성, 설계상·표시상 결함 부존재, 담배의 중독성 축소·은폐 불인정 등을 이유로 담배 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건보공단은 그해 12월 항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항소심은 올 1월 말 7차 변론까지 진행됐다.

건보공단은 재판부가 주문한 흡연과 질병 간 구체적 인과관계 및 개연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해 4월28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2023년 담배 소송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발표는 이강숙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가톨릭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이 맡았다. 이 회장은 “심층 분석 결과 흡연과 폐암·후두암의 인과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담배 회사가 발암물질을 제조·판매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흡연과 담배소송 대상 암종은 특이성이 매우 높다고 인정되며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의로운 재판부가 필요한 때다”라고 강조했다.

“니코틴 중독성 반증 결과”…담배회사 내부문건 공개 요구도 

전국 11개 시·도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연구에서 대상자들의 흡연 시작 연령은 20대가 15명, 10대 14명, 30대 1명이다. 암 진단 시 연령대는 61~70세 16명, 51~60세 11명, 71세 이상 3명이었다. 암 진단까지 흡연 기간은 41~50년이 14명으로 가장 많고 31~40년 10명, 51~60명 6명 순이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9명, 직업상 유해 물질 노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21명은 음주력도 없었다. 이 결과에 대해 이 회장은 “니코틴의 중독성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연구에 참여한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대상자들이 평균 1963년에 흡연을 시작했고, 그 당시 사회적으로 담배의 유해성, 중독성에 대한 정보나 금연교육이 부족했던 점을 짚었다. 실제 담뱃갑에 경고문구가 처음 들어간 때는 1976년으로, 1996년 이전까지는 경고문구가 작은 글씨로 담뱃갑 옆면에 들어가 있었다.

김 교수는 “담배 제조사들은 담배의 유해성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하지만 소송 대상자들이 흡연을 시작해 중독된 시기 한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폐암의 일반적인 잠복기는 최대 30년”이라며 “과거 우리나라의 사회적 흡연 환경과 흡연자 진술을 토대로 봤을 때 담배 위해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외국 담배 회사처럼 담배 유해 성분과 첨가물을 공개하고 회사 내부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니코틴과 타르를 포함한 8종의 발암물질만을 담뱃갑에 표시해 판매되고 있다. 현재 담배 유해 성분과 함유량 공개를 위해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간 입장 차와 담배 회사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현숙 대한금연학회 회장(신한대학교 간호대학 교수)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담배 회사에 대한 건보공단의 소송은 합당하다. 담배의 중독성과 위해성을 알려야 하고, 담배 회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외국 담배 회사처럼 우리나라도 담배 회사의 내부 문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 사법부의 인식 변화와 함께 담배의 위험성과 중독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통해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담배 회사는 입장 표명이 어렵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따로 전할 말이 없다”며 신중을 기했다.

건보공단은 담배 소송 2심을 승소로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세미나 시작 전 기자들과 만나 “담배가 확실한 발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폐암에 걸린 3000여명의 환자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서 한 명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의학적으로 분명한 잘못”이라며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중심으로 법리 검토를 진행해 무엇이 부족했는지 철저히 살피고 새로운 증거를 마련해 2심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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