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뒤에 비밀 공간”…서울광장 지하, 첫 시민 탐험 [가봤더니]

“문 뒤에 비밀 공간”…서울광장 지하, 첫 시민 탐험 [가봤더니]

기사승인 2023-09-08 19:43:02
8일 오전 ‘숨은 공간, 시청 앞 서울광장 아래 :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 첫번째 탐사대가 서울광장 밑 지하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유채리 기자

간간이 지하철 소리가 들렸다. 천장 환풍구에선 바람이 새어 나왔다. 서울광장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장난감 창고 앞. 평소 오가던 일상적인 공간 바로 옆에, 그동안 몰랐던 광활한 공간이 있었다.

8일 오전 11시 서울광장 아래 지하 공간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에 공개됐다.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지하 2층에 위치한 곳으로 폭 9.5m·높이 4.5m에 총길이 335m, 3182㎡에 달한다. 언제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높이가 다른 지하철 2호선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날은 지하 공간을 시민에게 공개하는 ‘숨은 공간, 시간 여행 - 시청 앞 서울광장 아래: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 첫날이었다. 지난 6일 오전 9시 공공예약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접수를 시작했고, 3분 만에 모든 예약이 마감됐다.

지하공간 탐사 출발 지점은 5평 남짓한 장난감 창고였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지 바닥엔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장판이 끈적였다. 안전용품을 착용하고 두 번째 방을 지나자, 불빛 하나 없이 덥고 습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더 크고 어두웠다. 한걸음 들어가자 발소리가 울렸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지하 공간에 들어선 차윤서(21)씨는 안전모에 달린 랜턴으로 지하 공간 구석구석을 살펴보느라 바빴다. 그는 “공간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이라며 “문 하나 지났다고 (분위기가) 바뀐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승모(77)씨에겐 만약 전쟁이 나면 이 지하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승씨는 “전쟁을 대비해 방공호 같은 걸 만들어놓은 건지 궁금해서 참여했다”고 했다.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에 있는 석순. 천장의 배수로에서 새어 나온 석회수가 만들어냈다.   사진=임형택 기자

조금 걸어가니 천장 위 배수관에서 내려온 긴 종유석과 배수로에서 새어 나온 석회수가 스티로폼처럼 쌓인 석순이 나타났다. 탐사대가 걸음을 멈추고 종유석과 석순 사진을 계속 찍자, 스태프가 이동해야 한다고 외쳤다. 곳곳에 초록색 그물과 실리콘통이 굴러다녔다. 더 걸어가자 콘크리트 경사로와 철제 계단이 보였고, 올라가면 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환승 통로가 나왔다.

시민 탐험 첫날 참여한 시민들은 대체로 들뜬 분위기였다. 유모(31)씨는 “지하에 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라며 “어둡고 텅 빈 공간이라 현실 같지 않다”고 말했다. 차씨는 “흔하지 않은 공간인데 첫날에 참여해서 기분 좋다”라며 “연결돼 있으면서도 단절된 느낌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아들 오재현(22)씨와 함께 온 황소영(52)씨도 “이야기를 따라 알지 못했던 공간을 탐사하는 게 재밌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반면 탐사 시간이 10분이 채 안 돼 “온전히 체험할 수 없었다”며 아쉬워하는 의견도 있었다.

8일 안전 헬멧과 분진 마스크를 쓴 채 서울 종로구 서울광장 지하공간을 탐사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유채리 기자

탐사를 마치고 안전용품을 벗은 시민들 얼굴에 마스크로 생긴 줄 두 개가 선명했다. 이날 첫 번째 탐사대원들은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황씨와 오씨는 안과에 들렀다가 종로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모(34)씨도 함께 온 친구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예정이다. 이씨는 집에 가서 오전에 못한 공부를 할 계획이다.

이날 시작한 ‘숨은 공간, 시청 앞 서울광장 아래 :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는 오는 23일까지 매주 금, 토요일(6일), 하루 네 차례 진행된다. 인터넷 사전 접수는 모두 마감됐고, 현장 접수는 탐사 당일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 제2청년활력소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이날 탐사를 담당한 임종현 공공건축2팀 팀장은 “지하철 역사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공간”이라며 “앞으로 더 좋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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