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듣는 게 일상”…악성 민원에 떠나는 저연차 공무원

“욕 듣는 게 일상”…악성 민원에 떠나는 저연차 공무원

기사승인 2023-09-23 06:05:02
공무원 준비생들이 밀집한 서울 노량진 한 거리. 사진=박효상 기자


# 올해 일을 시작한 1년 차 공무원 A(25)씨에게 민원인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는 걸 듣는 건 일상이다. 일을 못 하게 만들겠다며 그의 이름을 적어가기도 한다. 원하는 대로 안 해준다고 욕하는 악성 민원인에게 공무원이 저항하긴 힘들다. 상대가 욕을 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도 나고, 두렵기도 하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저연차 공무원들이 공직사회를 떠나고 있다. 2011년 93.3대 1까지 치솟았던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올해 22.8대 1까지 떨어졌다.

악성 민원은 담당 공무원을 괴롭히거나 불법을 요구하는 등 악질적 민원을 뜻한다. 폭행, 폭언 등을 하거나 반복적으로 같은 민원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 성희롱하는 것도 포함된다. 2021년 전국공무노동조합이 2030청년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악성 민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5%가 ‘악성민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경기 한 세무서에서 민원 업무를 담당하던 한 공무원이 지난달 16일 사망했다. 해당 공무원은 소리를 지르는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실신한 뒤 의식 불명에 빠졌다가 끝내 숨졌다. 지난해 6월 서울 양천구 한 주민센터에서는 술에 취한 민원인이 쇠망치를 들고 찾아와 폭언과 자해를 하며 직원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21년 11월 서울 신정동에선 한 주민센터 직원이 목을 졸린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 한 행정복지센터에서는 흉기 난동 사건도 벌어졌다.

단순 민원이 폭력과 사망 사건까지 이어지는 일이 자꾸 일어나자, 저연차 공무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강원에서 근무하는 2년 차 공무원 B(24)씨는 “(민원인들은) 공무원들이 세금을 받아먹으면서 본인들을 자꾸 괴롭힌다고 주장한다”며 “민원 부서는 다 힘들다지만, 요즘 보도를 보면서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악성 민원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가 벌써 몇 년째”라며 “정책과 지원이 많아지면서 민원량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안전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공직사회를 떠나는 저연차 공무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근무 3년 미만 퇴직 공무원 수는 지난해 기준 8492명.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3년 미만 공무원 퇴직 인원은 2018년 3043명, 2019년 4099명, 2020년 5938명, 2021년 7462명으로 5년 사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악성 민원은 저연차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5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무원 2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그만두고 싶은 이유 1위는 ‘낮은 보수’였다. 20~30대 공무원이 절반 정도 참여한 이 조사에서 그만두고 싶은 이유 2, 3위가 ‘과다한 업무’와 ‘악성 민원’이 뒤를 이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등 소속 민원 담당 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 등 건수는 4만6079건으로 2019년 3만8054건보다 크게 늘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올해 국가직 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은 22.8대 1로 2005년 이후 최저다. 공무원 준비생들도 악성 민원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1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취준생 김모(23)씨는 “꽤 오래 공부해 왔는데, (흉기 난동 사건을 보고) 시험을 포기하고 싶었다. 두려웠다”며 “공무원을 지켜줄 제도가 필요하다.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처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관련 법령을 개정해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 조치를 의무화했다. 지난 3월엔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를 위해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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