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전기버스를 25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간 내연기관차를 이용하지 않고 지내보겠다고 선언한 지 삼일 째. 지하철역까진 17분이나 걸어야 했다. 슬슬 후회가 됐다. 분명 이 정류장에 전기버스 노선이 다니는 것을 확인했는데.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려던 순간, 저 멀리 내가 찾던 버스가 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냉큼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화두로 오른 뒤부터 전기차 보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도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개인이 이용하는 승용차 뿐만 아니라 친환경 대중교통의 확산도 눈에 띈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를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마을버스 490대를 포함한 시내버스 총 3500대의 전기버스를 보급해, 서울시에서 운행 중인 시내버스의 40% 이상을 전기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7400대, 그중 1087대가 전기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문득 ‘전기차가 이 정도로 보편화되었다면 내연기관차를 아예 이용하지 않고도 서울 시내를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빼봤다. 일주일 서울에서 온실가스 배출 없이 살아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탄하지 않았다.
첫날, 신설동에 볼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내가 매일같이 버스를 타는 우리집 앞 정류장엔 전기버스 노선이 다니지 않았다. 도보 20분 거리에 12대 노선이 지나는 정류장에는 전기버스가 제법 다녔다. 걸어갈까 고민하다 태어나서 처음 따릉이를 빌렸다.
오랜만에 탄 자전거는 비가 오지 않으면 정말 최고의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대중교통 대신 전기자전거만 타고 프랑스 파리를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시에 왜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았는지도 생각났다. 우리 집 근처에는 자전거 도로가 거의 없었다. 자전거도로가 없으면 도로에 바짝 붙어 타야 하는데, 시속 오십 키로로 달리는 차 옆을 자전거로 지나가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인도로 다니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정류장 근처 자전거 보관소에 따릉이를 반납했다. 의식하고 보니 꽤 많은 전기버스들이 정류장을 지나쳤다. 전기버스가 아닌 버스 두 대를 보낸 뒤 내가 탈 전기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종암사거리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신설동으로 향했다.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덜컹거림이 적게 느껴졌다. 평소 30분 정도 걸리는 길이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넷째 날은 여의도로 출근해야 했다. 광흥창역에서 내려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향하는 5713번 버스를 탔다. 30분 정도 여유 있게 이동했는데 이게 웬걸, 10분도 기다리지 않고 전기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여의도는 전기버스가 많았다. 덕분에 퇴근길에도 수월하게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났는데 술자리가 길어져 막차가 끊겼다. 습관처럼 택시를 부르려다 내가 부른 택시가 전기차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히 교통수단을 알아봤으나… N버스는 전기차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길에 나와 ‘EV’ 표시가 있는 차를 눈이 빠져라 찾았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딱 한 대 지나가는 전기차 택시를 발견해서 냉큼 잡아 타고 왔다. 아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기사님께 언제부터 전기차로 택시를 운행했냐고 여쭤 보았다. 기사님은 “바꾼 지 일 년이 채 안 됐는데, 다른 것은 다 만족하지만 충전기가 너무 적어 고민이다”라고 하셨다.
전기차가 대량으로 보급되고 대중교통도 모두 친환경 수단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인 것은 맞다. 그러나 현재 탄소절감을 위해 대중교통으로 전기차를 활용하기엔 아직 한참 무리라는게 이번 빼봤더니의 결론이었다.
현재 서울은 전기차 노선을 94개 운영 중이지만, 전기버스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한참 돌아가거나 중간에 내려서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 후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기버스 노선이 교통어플에 적용되어 얼마나 운용되는지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거나, 택시 호출 어플에 전기차만 부를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이 스스로 탄소절감을 이뤄나갈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