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총선 전초전’으로 불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선거를 이끌었던 당 지도부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진교훈 민주당 후보는 최종 득표수 13만7065표(득표율 56.52%)를 얻으며 당선됐다. 경쟁자인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9만5492표(39.37%)를 얻는 데 그쳤다.
국민의힘으로서 이번 참패는 큰 충격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격차가 개표 초반부터 이어진 탓이다. 당초 여권에서는 김태우 후보의 패배를 직감하는 분위기가 포착돼왔다. 강서구는 전통적인 야당 텃밭인데다, 김태우 후보의 ‘귀책사유’로 이뤄지는 보궐 선거인 만큼 민주당의 승리를 예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두 후보 간 표차는 4만1573표, 득표율 차이는 17.15%p에 달했다. 적은 표차로 패배할 경우, 내세울 수 있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논리도 힘을 잃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김 후보가 51.3%를 득표해 민주당 후보를 2.6%p 차이로 이기고 강서구청장에 당선됐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내년 총선의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 민심이 이탈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원인으로는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 사태로 인한 민주당 지지층 결집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논란에 따른 중도층 이탈 등이 꼽힌다. 아울러 ‘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국민의힘 당규를 위배하면서까지 공천을 밀어붙인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 결정이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힘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김태우 후보를 ‘윤심’(尹心) 후보라고 내세운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한 만큼 후폭풍은 거세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임명직 당직자 전원의 일괄 사퇴가 건의되기도 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자를 결정하던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이철규 사무총장을 비롯해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조직부총장 등이 임명직 당직자에 속한다.
당 지도부는 수습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이번 선거의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분골쇄신을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당장 오는 13일 긴급 최고위원회의, 15일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미래비전특별위원회 출범, 총선기획단 조기 출범, 인재영입위원회 구성 등 쇄신책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조기 총선 모드로 전환해 보궐선거 책임론을 차단하고, 공천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 승리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진 후보 당선이 확정된 전날 밤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며 “더 겸허히 민심을 받들겠다”고 밝혔다. 민생 현안·정책 발굴에 집중하며, 내년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권심판론이 탄력을 받은 만큼, 향후 대여 공세 수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며 “국민은 오만과 독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국정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총리의 해임, 법무부 장관의 파면, 부적격 인사에 대한 철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자축 분위기를 경계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승리에 도취해 이재명 체제로 이겼으니 내년 총선도 압승이라 생각하면 민심 쇠몽둥이가 날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