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감독 거부 운동도”…교사들, 학부모 항의 홀로 감당

“수능 감독 거부 운동도”…교사들, 학부모 항의 홀로 감당

기사승인 2023-11-24 17:12:49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6일 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 감독관이 학생들 기입 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감독하는 교사들에 대한 이의‧항의 제기가 나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사 개인을 보호할 명확한 체계가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과 21일 수능 감독관을 했던 한 교사의 학교에 학부모가 찾아가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측 요청에 따라 감독관에 대해 경호 등 신변 보호 조치를 했으나, 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 ‘수능 감독 거부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천교육교사모임 관계자는 “수능 감독은 스트레스가 크고 감당해야 할 위험도 많다”라며 “1인 시위를 선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능 감독을 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지금 수당의 약 두 배를 받는다 해도 이 일은 정말 안 할 거다. 수능 감독 가야 한다는 사실에 몇 달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 선생님들 반응도 (감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수능 감독 안 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최소한 안전장치도 없이 매번 강제 징집당하고, 민원 들어오면 해결해 줄 것도 아니고 오로지 교사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내용의 불만 섞인 수능 감독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021년 중‧고교 교사에 실시한 ‘수능 감독제도 개선을 위한 긴급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8%가 ‘과도한 책임’을 수능 감독을 기피하는 원인이라고 답했다.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하며 받는 민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신규 교사는 가급적 배제하고, 전체 총괄 역할인 1감독은 고등학교 교사가 맡아야 한다는 식의 운영 원리는 세밀하게 정해져 있다”라며 “그렇지만 민원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응해야 하고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체계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와 함께 교권회복을 위한 대규모 집회가 지난 9월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렸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교사들의 교육활동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도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학교에서 치러지는 일반 시험 감독은 교육활동으로 인정되지만, 수능 감독은 인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학부모 항의 시위의 경우,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갔기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돼 학부모의 교권 침해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수능 감독에 대한 명확한 교육활동 정의가 없는 상태에선 다툼의 여지가 있어, 항의 시위에 대해 교사를 신속하게 보호하기 어렵다. 실천교육교사모임 관계자는 “수능은 교육부의 사무를 교육청이 대리해서 이뤄지는 식”이라며 “수능 감독 활동이 교육활동인지에 대해 모호한 상황이다. 사실상 교육활동의 일부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능 감독을 하는 교사들을 위한 단체 보험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소송 후 법률 재판 진행 시 피보험자가 지급한 변호사 비용 등 사후 보완책이란 한계가 있다. 과거 수능 감독을 하다 긴장해 기절한 A 교사가 수험생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일이 있었다.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전문가 역시 교육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다고 제안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능 감독은 교사 본인들이 신청하기보다는 요구에 의해 하고 있다”라며 “교사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제자들이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교육활동의 연장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능 부정 행위나 감독할 때 유의 사항 등은 명확하게 규정돼 있으나 보호 부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보다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부모를 경찰에 고발 조치한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매우 잘못된 이의 제기 방법”이라며 “명예훼손, 협박 등의 범죄 행위로 보여 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부와 연계해 관련 이슈들에 대응해왔다. 이번 결정도 교권 보호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취지”라며 “지속적으로 유의해서 지켜보며 세밀한 조치들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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