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5개” “피곤할 때도”…후기 읽는 사람들 [후기 공화국①]

“무조건 5개” “피곤할 때도”…후기 읽는 사람들 [후기 공화국①]

기사승인 2023-12-06 06:00:31
게티이미지뱅크


# 송모(35)씨는 무언가를 살 때 후기를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다. 후기가 없는 상품은 선택지에 넣지도 않는다. 후기가 없으면 품질이 떨어지는 등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송씨는 “후기가 없으면 실패한 선택이 될 것 같다”라며 “모험은 피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 신모(23·서비스직)씨도 어딘가에 가거나 물건을 살 때 후기를 꼭 본다. 스스로와 잘 맞는지, 가성비·퀄리티 측면에서 손해 보지 않을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신씨는 “미리 경험한 사람들의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뭔가를 하기 전 온라인 후기를 먼저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후기가 일상화되며 값싼 상품이나 문화재 등 후기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한정된 시간과 재화를 투자하는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2021년 실시한 ‘온라인쇼핑 이용후기에 대한 소비자 이용행태와 실태파악’ 조사에서도 소비자 97.2%가 후기를 확인한다고 답했다. 후기를 보는 이유는 ‘구매 후 불만족을 줄이기 위해서’가 82.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후기와 관련된 사건‧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6일에 치러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 당일 오전에 별점 5점을 매겨야 내려 준다는 택시 기사를 만난 수험생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한 보도를 통해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영상의 후기를 믿고 800만원을 잃은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무조건 후기 5개 이상은 봐요”

최근엔 후기 확인 자체가 습관이 된 분위기다. 박우진(가명‧32)씨는 무언가를 사기 전 무조건 5개 이상의 후기를 본다. 그는 “최대한 꼼꼼하게 여러 후기를 찾아보고 결정한다”라며 “대체로 만족했다”고 설명했다. 김세운(가명‧32)씨 역시 “상황 따라 다르지만, 후기를 3개 이상 꼭 본다”고 말했고, 김선준(24)씨는 “방금도 여러 후기를 보고 물건을 샀다”며 “영양제, 휴대폰 등 뭘 사거나 여행 갈 때도 후기 확인은 빼놓지 않는다”고 답했다. 2021년 한국소비자연맹이 실시한 조사에서 ‘그냥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어서’라는 응답이 16.7%에 달했다.

이젠 1000원 정도의 저렴한 물건도 후기를 보고 산다. 이모(35)씨는 “편의점에 가도 후기를 보고 물건을 고른다”라며 “사기 전 맛이 어떤지 등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유튜브, SNS 등에서도 생활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1000원, 2000원짜리 상품을 써본 후, 평가하는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 숨은 꿀템’, ‘보이면 무조건 사야 하는 꿀템’ 등의 동영상은 각각 조회수 300만회, 100만회를 훌쩍 넘겼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사진=임형택 기자


후기가 올라오는 범위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볼펜이나 옷, 식재료, 식당과 카페, 영화‧책 등은 물론이고 유‧초‧중‧고 교사나 대학교수에 관한 후기도 올라온다.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같은 문화재에도 “두말할 나위 없는 우리 민족의 걸작” “사진 찍을 곳은 많은데 주차나 화장실 같은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지저분해 아쉬웠다”는 등의 경험담이 후기로 올라온다.

보다 보면 피곤…‘후기의 역설’

다양한 후기가 범람하며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에 피로를 느끼거나 높아진 기대에 실망하는 ‘후기의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류하늘(가명‧29)씨에겐 사진 후기 등을 보고 고심한 끝에 한 식당을 찾아갔지만 실망한 기억이 있다. 류씨는 “후기에 묘사된 맛을 상상하고 갔는데, 원하던 맛이 아니라 후회했다”고 말했다. 습관처럼 후기를 본다는 신모(23·서비스직)씨는 “후기마다 의견이 다른 때가 많아서 갈팡질팡한다”라며 “결정하지 못하고 수십분 동안 후기만 보다가 피곤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후기로 생긴 피로도를 풍자하는 한 온라인 글이 최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좋아하던 라멘집이 평이 나빠서 안 가게 됐고 보고 싶다고 생각한 영화도 시간 낭비라는 평이 올라와 안 봤다. 그렇지만 라멘은 맛있었고 영화는 재밌었다’는 내용의 SNS 글이다. 2014년 당시 1만4000번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된 이 글은 최근에도 온라인상에서 반복해서 올라오고 있다. 게시글엔 “정말 명언이다. 줏대 있게 살아야 하는데” “영화 이야기 정말 공감한다. 주변 친구들이 전부 재미없다고 해서 안 봤는데 나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웹툰이나 소설 볼 때 댓글 창 안본 지 좀 됐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전문가는 후기가 주는 재미에 주목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필수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라며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자신만의 사실을 구상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람마다 선호하거나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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