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의사 장진홍 선생을 기억하며 [자기전1분]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을 기억하며 [자기전1분]

기사승인 2023-12-12 21:30:02
12일 대구 중앙로역 인근 조선은행 폭파 의거 터에서 열린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흉상 제막식'에서 시민들이 장진홍 선생 흉상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2일 대구 중구 중앙로역 인근 조선은행 폭파 의거 터에서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흉상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창여(滄旅) 장진홍 선생은 1927년 폭탄을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배달시켜 은행원과 경찰 등 5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경북 구미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입니다.
12일 대구 중앙로역 인근 조선은행 폭파 의거 터에서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장 선생은 1895년 6월 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4년 3월에 조선보병대에 입교했으나 일제 치하에 있는 군대에서 더 이상 복무하기가 양심적으로 용납되지 않아 1916년 제대했습니다. 이후 이내성의 권유로 광복단에 가입 후 활동하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1919년 귀국한 그는 3.1 운동과 일제의 만행자료를 세계에 폭로하고 항일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12일 대구 중앙로역 인근 조선은행 폭파 의거 터에서 열린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흉상 제막식'에서 한 시민이 꽃다발을 놓고 있다.

장 선생은 대구 조선은행 의거 이후 1928년 안동과 영천에서 다시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1929년 일본 오사카에 숨어살던 중 일제에 잡혀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사형 집행일 하루 전인 1930년 7월 31일 옥중에서 자결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장 선생과 의열단에서 활동했던 시인 이육사(이원록)는 대구형무소에 투옥 당시 장 선생이 받은 수감번호'264' 를 아호로 삼기도 했습니다.  장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습니다.

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사진=연합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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