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본격적인 공천 심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공천 잡음’에 휘말리고 있다. 특정 비상대책위원을 사실상 전략 공천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내면서다. 당내에서는 당장 시스템이 아닌 낙하산 공천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앞서 한 위원장은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서울 마포을에 투입하는 ‘자객 공천’ 방침을 밝혔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시스템 공천 기준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한 위원장은 “김 위원은 진영과 무관하게 공정과 정의를 위해 평생 싸워왔다”며 “김 비대위원이 마포에서 정청래와 붙겠다고 나섰다. 김경율과 정청래, 누가 진짜냐”라고 치켜세웠다. 회계사 출신인 김경율 위원은 과거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진보 진영 인사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등을 돌린 인물이다. ‘조국흑서’를 집필하는 등 운동권 세력을 비판해왔다.
한 위원장의 ‘깜짝 발표’는 19대 총선부터 마포을 당협위원장을 지낸 김성동 현직 마포을 당협위원장과 사전 조율 없이 이루어졌다. 당장 공천이 위태로워진 김 위원장과 지역 당원 일부는 반발에 나섰다. 김상한 마포을 당협 사무국장은 “10년 동안 마포를 지켰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당원들이 김 사무국장을 제지하며 행사장에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한 위원장은 빠른 진화에 나섰다. 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공천은 시스템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공천은 공관위의 룰을 따라야 한다”며 “(김 비대위원 출마를 소개한 것은) 당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 말한 것일 뿐 그걸 넘어 그분들(기존 당협위원장 등)에 대해 불이익을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당장 당내에선 물밑 교통정리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천 심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낙하산’을 내리꽂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여권 내 한 핵심 원외당협위원장은 “공천이 아닌 ‘사천’으로 오해받기 쉬운 상황이 됐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 위원장이 벌써부터 ‘여의도식 문법’에 젖어 우려가 크다. 야당의 정쟁 프레임에 빠져 부화뇌동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복수의 원외위원장들 역시 입을 모아 “공천 내정 수락자의 비대위 활동은 적절치 않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평한 공천 심사가 필요하다” 등의 불만을 표했다.
한 여권 관계자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스스로 공정한 공천이 아닌 부정 공천임을 실토했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은 과거 대통령들처럼 공천에 관여하지 않을테니 당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 해달라고 당부했음에도 유권자를 우롱하고 공관위를 무시하고 원외당협위원장을 모욕한 행위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이 ‘한동훈표 시스템 공천’ 도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한 위원장의 입으로 시스템을 다운시킨 셈”이라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한 위원장은 ‘룰에 맞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김 비대위원의 공천을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시스템 공천이란 말을 애초부터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독자 공천 시스템, 마포가 그리 만만한가”라며 “본인은 못 나오고 남을 버리는 카드로 희생양을 삼다니 비겁하다”고 질타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