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지지하면서 벌어졌던 ‘사천(私薦)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한 위원장이 서울 중구·성동구갑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전 의원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대통령실 출마자가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한 위원장은 29일 오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우리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운동권 특권 정치에 대한 심판을 시대정신으로 말씀드린 바 있다”며 “(더불어민주당) 몇 분이 경제 민생론으로 답하겠다고 하는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은가”라고 말했다.
이는 전날 서울 중구·성동갑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윤 전 의원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서울 중구·성동갑은 현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역구다. 홍 원내대표가 험지 출마에 나서면서, 이전 지역구 주인이었던 임 전 실장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윤 전 의원과 임 전 실장은 오는 4월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갑 지역구에서 맞대결할 가능성이 크다.
임 전 실장은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을 지냈다. 윤 전 의원은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의 ‘경제통’이다. 한 위원장의 발언은 ‘경제전문가 여당 후보’와 ‘무능한 운동권 야당 후보’ 대결구도를 부각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중성동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권오현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위원장이 윤 전 의원을 지원사격한 점과 관련해 “언론에서는 이미 전략공천이 된 양 보도하고 있다”며 “국민의힘 내의 기득권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같은 8090 젊은 정치인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많이 허탈하기도 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책임감을 갖고 운동권 기득권 카르텔을 혁파하고, 민생경제를 살려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자기 정치하고, 국회의원 중도 사퇴하는 사람을 어떻게 유권자들이 지지하고 뽑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앞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서울 마포을 지역구 출마자로 김경율 비대위원을 언급하면서 사천 논란에 휩싸였다. 김 위원은 한 위원장에 의해 영입된 인사로, 당 안팎에서는 ‘시스템 공천’을 농단했다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수년간 지역 기반을 다져온 김성동 마포을 당협위원장은 깊은 유감을 표시했고, 이를 계기로 대통령실과 여권 주류는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자신이 원칙으로 삼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실망감을 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윤-한 갈등’이 봉합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여권 내에서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김 비대위원이 서울 마포을 출마 의사를 이미 밝혔기 때문에 비대위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총선의 최대 난제인 공천과 관련해 잡음이 계속돼 걱정이 크다. 최근에도 심판인 비대위원이 마포을 출마까지 공언해 논란을 불렀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지도부와 논의하면 사천이 아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현 모습은 사실상 공천관리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논란 당사자인 윤 전 의원은 사천 논란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무슨 사천을 하겠나. 한 위원장과 통화도 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30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한 위원장의 발언이 공익적인 마음인지 정치적 욕심인지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알겠나”라면서도 “아마 그분은 뭘 하든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 위원장의 머릿속에는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에서 꼭 찾아와야 하는 지역들, 전반적인 판세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 이 두 개밖에 없을 것”이라며 “후보 입장에서는 지역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