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부활 신호탄”…대법 가는 CJ대한통운 교섭 의무

“노란봉투법 부활 신호탄”…대법 가는 CJ대한통운 교섭 의무

원·하청 구조 기업들 노사 관계 파장 상당할 듯
노동자 근로 개선 단초될까…대법원 판결 관심

기사승인 2024-02-05 06:05:01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민주노총이 연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CJ대한통운은 단체교섭요구에 응하고 국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나온 가운데 산업·노동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법원이 특수형태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것인데, 원·하청 구조로 이뤄진 노사 관계 향방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6-3부는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특수고용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J대한통운은 이번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상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도 “택배 산업 현실을 외면하고 전국 2000여개 대리점의 존재를 부정한 판결”이라고 유감을 표한 상태다.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들의 교섭대상은 하청대리점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기존 대법원 판례상 사용자는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를 뜻하기에 교섭 거부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심은 CJ대한통운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역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이전 판례보다 기준을 넓게 해석했다. 2심도 이같은 1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CJ대한통운이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이번 사건은 대법원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다. 택배업계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사안이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노동계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상철 법무법인 예헌 변호사는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 권한이 원청사에 있는 경우 해당 원청사와 단체교섭을 하도록 할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판결로 생각된다”면서도 “지배·결정 권한의 판단기준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는다면 실무적으로 큰 혼선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된 ‘노란봉투법’의 부활이 탄력을 받지 않겠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신 변호사는 “소위 노란봉투법의 취지 및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해당 법률안이 헌법에 따른 입법 절차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지 못했음에도 사법부가 법률안 내용과 동일·유사한 취지의 판결을 내리는 건 삼권분립의 원리에 비춰 볼 때 다소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노동정책 전문가인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노사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명예교수는 “노동시장 구조도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뀐다.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놓고 노동자를 싸게, 유연하게 고용하는 상황”이라며 “과거 노동법을 기준 삼아 계속 헌법상 ‘노동 3권’에 해당이 안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사각지대의 노동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법 상 (기업들의) 제도적인 지체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법원에서 사법적인 판결로 해결하는 상황”이라며 “경영자가 수익을 위해 노동자를 위한 처우나 권리를 무시하는 사태를 바로잡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도 “기업별 노동 프로세스가 다르긴 하나 원청 사용자성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예상했다. 

정 교수는 또 “쟁점은 노동사용자 의무가 있냐 없냐의 부분인데 중노위부터 2심까지 일관되게 CJ대한통운이 사용자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대법원서 달리 판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동안 동종업계 경쟁자들의 견제가 있었다면 이젠 내부 견제가 생긴 셈”이라며 “여러 업무 프로세스나 수수료 등도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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