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회사에 귀여운 내 자리”…사무실서 ‘책꾸’하는 청년들

“누추한 회사에 귀여운 내 자리”…사무실서 ‘책꾸’하는 청년들

기사승인 2024-02-19 11:00:01
직장인 김예인(29‧가명)씨 사무실 책상에는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튜브’와 쿵야레스토랑의 ‘주먹밥쿵야’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진=유민지 기자

# 직장인 김예인(29‧가명)씨의 사무실 책상은 굿즈샵을 연상케 한다. 김씨 자리엔 그가 좋아하는 카카오 프렌즈 ‘튜브’와 쿵야레스토랑 ‘주먹밥쿵야’ 캐릭터 인형이 있다. 파티션엔 사내 행사에서 찍은 사진을 기록장처럼 붙여놨다. 김씨는 “책상에 귀여운 것들이 많으면 기분이 좋고 내 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정감을 느낀다”라며 “‘힘들다’고 말하는 주먹밥쿵야는 업무에 지친 나를 대변하는 소심한 반항”이라고 설명했다.

엔데믹 이후 사무실 출근이 재개되며, 회사 책상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는 일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일명 사무실 ‘책꾸’(책상 꾸미기)는 회사에 대한 만족이나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회사 내 유일한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지난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데스크테리어’(책상(desk)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다. 하루 중 오래 머무는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꾸미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내용이었다. 해당 게시글의 댓글에서는 “집보다 더 오래 있으니까 나한테 맞추게 된다”, “8년차인데 이번 달부터 꾸미기 시작했다. 퇴사하면 몽땅 다 들고 나올 거다”, “키보드도 편하고 예쁜 거, 가습기도 놓고 마우스도 손목에 좋은 걸 쓴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책꾸’가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건 아니다. 2017년 청년들 사이에서 한차례 유행이었다. 2017년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사 책상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물음에 직장인 10명 중 3명(36%) 그렇다고 응답했다. 연령별로는 20대(73.1%), 30대(69.4%)가 가장 많았고 성별로는 여성(44.0%)이 남성(29.7%)보다 많았다. 이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기세가 꺾였다가, 엔데믹이 찾아오며 재택근무가 줄어들자 다시 재개됐다.

직장인 이지은씨의 사무실 책상엔 도라에몽과 짱구 캐릭터가 가득하다. 사진=유민지 기자


회사에 정 붙이기?…“회사가 허락한 유일한 내 공간”

일부 청년들은 사무실 책상을 회사에서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심미적 만족과 안정감을 찾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도라에몽 마우스패드, 미니어처 담요, 짱구 엽서와 스티커로 사무실 책상을 꾸며놓은 7년차 직장인 이지은(29‧가명)씨는 “원래 좋아하는 캐릭터라서 조금씩 가져다 놓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집에 있는 책상은 난장판이지만, 사무실 책상은 귀여운 걸로 가득 채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너무 좋아서, 회사를 집처럼 생각해서 꾸민 건 아니다”라며 “이제 직장 동료들도 이 캐릭터들을 보면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없으면 허전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사무실 책상을 꽃으로 꾸미기도 한다. 서울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박은영(29‧가명)씨의 책상은 작은 꽃집이다. 일주일에 2~3번 꽃을 바꾸고, 다육이 등 공기정화 식물도 책상 위에 놓여있다. 박씨는 “남대문 꽃시장이 가까워 점심시간에 잠시 들러 꽃을 사온다”며 “내 자리가 예쁜 꽃과 식물에 둘러싸인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좋아하는 꽃이 탕비실, 회의실 등 공용공간이 아니라 내 자리에 있을 때 의미가 있다”라며 “회사 책상만큼은 내 마음대로 꾸며놓고 싶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청년들이 사무실 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아끼는 건 개인화된 2030 세대의 특성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나만의 것, 혼자만의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고 또 그것이 자신을 의미한다고 본다”라며 “같은 서울에서도 부모님과 따로 사는 형태를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에 나를 투영시켰던 기성세대와 달리 회사와 개인을 별개로 생각하기에, 회사에 있는 책상만큼은 내 소유라고 본다”라며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 나만의 책상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물건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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