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 깃발 아래 뭉친 이낙연·이준석 대표의 ‘낙준연대’가 결국 끝났다. 제3지대 4개 정당이 ‘깜짝 합당’을 발표한 지 11일 만에 맞은 파국이다.
이낙연 “개혁신당, 처음부터 ‘이낙연 지우기’ 계획”
이낙연 공동대표는 20일 서울 여의도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새로운미래로 돌아가겠다”며 “통합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 당을 재정비하고 선거 체계를 신속히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도덕적·법적 문제에 짓눌리고, 1인 정당으로 추락해 정권 견제도, 정권교체도 어려워진 민주당을 대신하는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그간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와 이낙연 공동대표는 지난주부터 총선 선거운동 주도권과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입당·공천 문제 등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다. 결정적인 갈등은 전날(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폭발했다. 이준석 대표가 3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총선 전권을 자신에게 위임하는 안건 표결을 강행 처리하면서다. 고성이 오가던 끝에 이낙연 대표 측은 “전두환한테 운명 맡기라는 식”이라고 반발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김종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전두환이 나라가 어수선하니 국보위를 만들어 국회를 해산한 거랑 뭐가 다르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대표는 통합 철회의 원인으로 이준석 대표의 ‘사당화’를 지목했다. 분당(分黨)의 책임을 이준석 대표에 돌린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합의를 허물고 공동대표 한 사람에게 선거의 전권을 주는 안건이 최고위원회의 표결로 강행 처리 됐다”며 “그것은 최고위원회의 표결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합주체들의 합의를 최고위원회 의결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중대한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정을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제안을 묵살했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대표가 개혁신당 내 이낙연계 입지를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기획설’도 제기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기 위해 이낙연 공동대표에 무리한 요구안 3개를 내놨다는 주장이다. △지도부 전원 지역구 출마 △선거 정책·홍보 지휘 권한 요구 △논란 인물은 비례대표 출마 제한 등이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그들(개혁신당)은 특정인을 낙인찍고 미리부터 배제하려 했다. 낙인과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답습된 것”이라며 “그들은 통합을 깨거나 저를 지우기로 일찍부터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적 합당 이전에 신당 판도가 분명해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며 “국민과 당원 여러분이 겪으시는 오늘의 실망이 내일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충정을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민 “이준석 하자는 대로 다 했다”
새로운미래 공동대표인 김종민 의원도 “주도권 다툼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보도다.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이준석 대표가) 하자는 대로 했다”고 ‘이준석 책임론’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인 내막도 폭로했다. 김 의원은 “이름 ‘개혁신당으로 하자’, 그 다음에 당직인선 사무총장, 수석대변인,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다 (이준석 대표가) 하자는 대로 하자. 그 다음에 나온 게 ‘선거운동 지휘권 달라. 공천권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주자’”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양측은 합당 당시 당 이름은 ‘개혁신당’을 쓰기로 했다. 당 색깔도 주황색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주요 당직은 원내대표에 양향자 의원, 사무총장에 김철근 전 국민의힘 당대표 정무실장, 수석대변인에 허은아 전 의원 등을 인선했다. 모두 이준석 대표 측 인사다.
이준석 “할 말은 많지만, 오만하진 않았나 성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낙연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소통관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낙연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통합 철회를 선언한 지 한 시간 만에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내가 성찰해야 할 일이 많다”며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관리할 수 있다고 과신했던 것은 아닌지, 지나친 자기 확신에 오만했었던 것은 아닌지, 가장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했던 것은 아닌지 오늘 만큼은 앞으로의 대한 호언장담보다는 국민께 겸허한 성찰의 말씀을 올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새로운미래가 제기한 ‘김종인 공관위원장 계획설’에 대해선 “완전한 모순”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공동대표는 “김종인 공관위원장 논의는 오히려 제가 아니라 이낙연 대표가 합당 선언 다음 날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라며 “그런데 논의 이틀 전에 이낙연 대표가 김종인 공관위원장을 만났다는 것까지 전해 들었다. 시간 순으로만 봐도 얼마나 모순된 주장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면서 “할 말이야 많지만 애초에 각자 주장과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 국민들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라고 이낙연 대표 측을 정조준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제 일을 하겠다. 개혁신당은 양질의 정책과 분명한 메시지로 증명하겠다”며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실망한 유권자에게 더 나은 새로운 선택지를 마련해 주기 위해 개혁신당은 앞으로도 낮은 자세로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지만, 따로 노력하게 된 이낙연 대표 및 새로운미래 구성원들의 앞길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양측의 ‘결별 후유증’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3지대 빅텐트가 11일 만에 좌초함에 따라 거대 양당에 맞서 대안 정당을 만들겠다는 제3지대의 동력도 떨어질 전망이다.
특히 빅텐트에 모인 5개 세력 중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이준석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낙연 대표가 ‘리더십 타격’을 입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낙연 대표가 독자 행보에 나선다면 '민주당 텃밭'인 호남과 수도권 지역 모두에서 고전할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당이 받은 정당 경상보조금(이하 보조금) 약 6억원 행방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개혁신당에 1분기 보조금 6억6654만원을 지급했다. 보조금 지급을 하루 앞두고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전격 입당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양 의원의 입당으로 의석 수가 5석이 채워지면서 일정 요건을 갖춰 개혁신당이 받은 경상보조금은 3000만~4000만원에서 6억원 규모로 뛰었다.
선관위는 특정일 당시 의원수를 기준으로 지급한 것이기 때문에 환수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탈당하는 의원이 생겨 의석수가 5석 미만이 될 경우 개혁신당은 기지급된 국고보조금 전액을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