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내부 균열 다져질까…이탈 장기화, 복귀는 요원

전공의 내부 균열 다져질까…이탈 장기화, 복귀는 요원

기사승인 2024-04-17 11:00:02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난달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사전 통지한 전공의들의 의견청취 기한이 15일 종료됐다. 이에 따라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이 곧 개시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전공의들은 묵묵부답이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복귀 여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구심점이 분명해 보이지 않고, 떠난 마음을 돌리기도 쉽지 않아 사태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전공의 1362명 “전체 투표 통해 복귀 여부 결정”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지난 2월 사직을 시작한 지 60여일 만인 지난 15일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직 전공의들은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집단 고소한다고 밝혔다. 전공의 1362명이 참여한 이번 고소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차원이 아닌 개별 전공의들이 뜻을 모아 추진했다.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였던 정근영씨는 이번 고소를 이끌며 박 차관의 경질을 촉구했다. 박 차관이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까진 병원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고소를 계기로 이들 전공의가 대전협과는 또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정부와의 대화에선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전협 비대위와 발을 맞춰갈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유화적 태도를 보이면 대화에 나설 건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대전협 차원에서 7대 요구안을 제출했고, 그 요구가 만족되면 전체 투표를 통해 복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며 “정부 협상은 박단 비대위원장이 결정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7대 요구안은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사직 전공의들은 지난 15일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이들은 박 차관이 경질되기 전까지 병원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사진=신대현 기자


전공의 내부 ‘불협화음’ 표면화…박단 위원장 탄핵 주장도

일부 전공의들로부터 신임을 잃은 박 위원장과 대전협 비대위가 정부 협상을 도맡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 상황이다.   

대전협은 지난 2월20일부터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박 위원장을 필두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사직한 11명의 비대위원이 주요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

지난 4일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면담을 전후로 전공의 내부 갈등은 극에 달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박 위원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의사 커뮤니티에는 그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랐고, 탄핵이 필요하다는 성명서까지 나돌았다.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만나기 전 공지를 통해 “2월20일 성명서 및 요구안의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하겠다”고 표했지만, 일부 전공의들은 충분한 내부 논의가 없었다며 분노했다.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만난 후 전공의들 사이에서 공유된 성명서에는 “(박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만남은) 대전협 비대위 내에서만 상의됐을 뿐 그 외 각 병원 대표들과는 사전에 총회나 투표 등의 방식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비대위가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불안에 휩싸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도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 성사는 전공의, 의대생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박 위원장과 11인의 비대위원의 독단적 밀실 결정”이라며 “밀실 결정에 이은 밀실 만남이며, 젊은 의사들은 ‘기습 합의’라는 2020년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복귀 촉구에도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 돌아올까…“정부 강공 통할 줄 알았다면 오산”

전공의 내부 균열이 예견됐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은 정부의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의 선택’이란 표현을 쓰며 사직에 나섰는데, 복귀는 단체 투표로 결정하는 등 모순된 의사결정 형태로 인해 정부와의 대화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사직한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지난 16일 류옥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전공의 150명에 대한 인터뷰 정성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 1581명 중 34%(531명)는 “향후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이 해결되더라도 전공의 수련 의지가 없다”고 답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과도한 업무에 지쳐서, 한국 의료의 희망을 찾지 못해서, 적정 대우를 받지 못해서 병원을 떠났다고 말한다. 한국을 떠나겠단 전공의도 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A씨는 “최근 사태로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을 깨달았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으로 건강보험료가 고갈되며 의료체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면서 “그전에 빨리 나라를 떠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정부는 전공의들을 겁주면 통할 줄 알았던 모양인데 오산”이라며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 수사를 당하면 오히려 반감만 커질 것이다. 젊은 세대의 전공의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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