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조건, 노조 설립·파업 보장?…실현 가능성은

전공의 복귀 조건, 노조 설립·파업 보장?…실현 가능성은

기사승인 2024-04-21 06:05:01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전공의 노조 설립이 전공의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열악한 전공의 수련·근무 환경 개선 방안으로 ‘전공의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전공의 노조 설립과 파업권 보장이 병원 복귀 조건으로도 제시돼 그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병원 복귀를 위해 선행돼야 할 조건으로 ‘전공의 노조와 파업권 보장’을 들었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3월13일부터 4월12일까지 1개월간 서면·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전공의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불만을 품은 전공의가 적지 않았다.

류옥씨에 따르면 레지던트 2년차 A씨는 “전공의 노조와 파업권이 보장돼야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레지던트 2년차 B씨는 “업무개시명령으로 대표되는 강제노동조항을 없애지 않는다면 동료 중 아무도 수련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전공의 노조 설립 주장은 앞서 전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들도 한 바 있다. 지난 2월29일 전임 대전협 회장들은 ‘전공의와 정부에 드리는 글’이란 입장문을 통해 노동에 대한 합당한 가치를 보장받으려면 의사 노조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한민국 의료는 전공의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의사 노동자로서 노동 3권 보장과 함께 정부 정책에 여러분의 주장이 우선 반영될 수 있도록 의사 노동 정책과 신설을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공의 노조 설립 주장은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추진과 공공의대 신설 등에 반대해 벌어진 의료계 파업 때도 나왔다. 제26기 대전협을 이끈 강민구 전 회장은 수련병원별 전공의 노조 설립을 추진하며 전공의 단체행동 때 조성한 비상대책위원회 투쟁 기금을 활용해 총 3000만원 한도로 노조 직접 지원금도 책정했다.

전공의 노조 설립 형식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 가입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 가입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 병원별 노조 가입 △상급단체 없이 별도 독립 노조 운영 등이다.

전공의 노조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2006년 직종별 전국 단위 조직으로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이 결성됐지만 저조한 가입률과 활동으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협 집행부를 맡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병원에서 단기간 근무하는 전공의 특성상 노조 활동 지속성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짚었다. 각 병원별로 노조지부장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 하나 총대 메기가 쉽지 않고 임기도 제한적이며, 여러 현실적 문제가 많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의정 간 대치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의사 노조가 일정 부분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지난 19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바른 의료개혁 토론회: 전공의 수련-노동환경 개선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국회토론회에서 오주환 대한예방의학회 교육위원장은 양측의 갈등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 노조가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며 노조 설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위원장은 “노동운동 투쟁의 끝에서 노동자와 고용자 양측이 테이블에 앉아 원만히 합의하면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서로 공격했던 것들을 다 무효로 한다”며 “이 과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전공의 노조를 만든다고 하면 적극 권장하고 싶고 지지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제18·19대 대전협 회장을 지낸 송명제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전공의가 노동자인지 수련교육생인지 모호했기 때문에 노조 설립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번 의료공백 사태로 전공의 노조 설립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송 교수는 “노조로 하여금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와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전공의들이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며 “이번 전공의 사직 사태를 계기로 노조 설립이 급격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전공의 노조 설립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노조가 설립돼 수련교육생이자 노동자인 전공의가 근로자로서의 지위만 주장한다면 수련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현재 의사 파업으로 환자가 무방비 상태에 놓였는데 노조로 하여금 의료계가 더 큰 권한을 갖게 된다면 환자와 국민은 얼마나 더 불행해질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사회적 기반이나 대책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신중히 논의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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