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바둑 여제’로 불렸던 최정 9단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다섯 판 연속 패배를 당하면서 몰락했다. 중국이 최초로 시도한 ‘풀리그 세계대회’가 최 9단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27일 오전 9시30분 중국 장쑤성 장옌시에서 제10회 황룡사배 세계여자바둑대회 최종 7라운드가 펼쳐진다. 한국은 6라운드까지 3승3패로 선전하고 있는 허서현 4단과 1승5패, 최하위로 추락한 최정 9단이 출전한다.
한국 여자 바둑 랭킹 1위 최정 9단은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기대를 모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전만 못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최 9단은 1라운드에서 한국 허서현 4단에게만 승리했을 뿐, 이후 다섯 경기에서 한 판도 건지지 못하고 연달아 패점을 당하면서 일찌감치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최 9단은 2라운드에서 중국 리허 5단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저우훙위 7단, 일본 후지사와 리나 7단, 우에노 아사미 5단, 다시 중국 루민취안 6단에게 모두 졌다. 내용 면에서도 이렇다 할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고, 해설자들이 의문을 표할 정도로 느슨한 행마를 연발하다 제풀에 쓰러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황룡사배 이전에 중국 여자을조리그 참가를 강행했던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 9단은 5월31일부터 6월7일까지, 중국에서 8일 동안 7판 대국하는 여자을조리그 특유의 ‘강행군’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국내 대회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중국으로 날아간 최 9단은 처참한 5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최정 9단은 지난 5월 막을 내린 한국 바둑 최대 기전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 불참했다. 이에 더해 9년 동안 주장을 맡았던 NH농협은행 여자바둑리그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난달 29일 쿠키뉴스 단독 보도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었다. 과거 세계 일인자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세돌 9단은 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했다 징계를 받을 뻔하기도 했는데, 최 9단은 불참 사유로 ‘건강’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비난을 면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딱 한 판씩만 대국하는 여자바둑리그에 불참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하루 쉬고 7판을 연속으로 둬야 하는 여자을조리그에는 참가했다는 점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여자바둑리그 승리 수당이 130만원에 불과한 데 반해, 중국 여자을조리그 승리 수당은 약 95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정 9단과 친분이 두터운 장은애 한국기원 홍보파트장은 쿠키뉴스에 “10년 동안 일인자의 자리에서 너무 쉼없이 달려왔고, 이제 육체 및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최 9단의 여자바둑리그 불참 사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국 현지 언론에서 최 9단이 ‘상금 분배’에 불만을 품고 한국바둑리그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세계대회 역사상 최초로 풀리그로 개최된 황룡사배에서 최정 9단이 최종 라운드를 승리하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프로 생활 15년 만에 ‘6연패’ 늪에 빠지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