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이어지는데 문제없다?…“귀 막고 외면 말라”

‘응급실 뺑뺑이’ 이어지는데 문제없다?…“귀 막고 외면 말라”

전공의 이탈하고 전문의 사직…“환자 죽어가”
“응급실 문 열어도 기능 못 하면 그것이 위기”
응급의학의사회, 1000만명 서명운동 개시

기사승인 2024-08-30 15:28:19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119구급대원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응급실 의사 부족이 근본적 문제이며 비상진료체계는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30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환자를 살리는 일을 하는 우리가 ‘환자가 죽고 있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위기가 아니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전공의가 집단 이탈하며 촉발된 의료공백으로 인해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문의까지 사직서를 내고 환자들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정부는 위기상황에서 눈을 돌리고 잘못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의료현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일 뿐 비상진료체계는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정말 위기가 아니라면 중앙사고수습본부부터 해체하고 비상진료체계 위기 단계를 내려야 한다”며 “의사와 국민이 위기라고 하면 위기인 것인데 굳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지 말라”고 짚었다. 이어 현재 응급의료 현장이 붕괴하고 있으며, 이 붕괴를 멈출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환자가 평시보다 두 배가량 증가하는 추석 명절이 되면 119구급차를 타고 길거리를 헤매다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의 사직이 이어지는 것도 문제로 지목했다. 업무 부담이 가중돼 전문의가 사직을 결심하거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겪는 전국 주요 병원 응급실은 파행 위기에 처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다음 달 응급실 야간 운영을 중단한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당초 14명이었으나 가중된 업무 여건 속에서 7명이 잇따라 사직서를 냈다. 건국대 충주병원의 경우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 7명 전원이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30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응급의료 현장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이 회장은 “정부가 전국 응급실 대부분은 문제가 없다고 전한 것은 거짓말이다. 응급실 문만 열려 있으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도 기능을 못 하면 그게 위기다”라며 “응급실 1개당 6명의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게 해외 기준인데, 지금 권역응급의료센터 절반 가까이가 전문의 혼자 근무를 하고 있다. 이는 환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효과 없는 임시대책만 내놓는 정부에 유감”이라며 “전공의와 의대생이 모두 돌아오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한다면 이는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젊은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한 일에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책임 면책 △응급환자 강제 배정 중단 및 119 유료화 실시 △응급실 전담전문의 진료과목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 △중앙응급의료센터 독립 및 상설 논의기구 마련 등을 요구하며 의료 정상화를 위해 1000만명 서명운동을 개시할 것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정부의 무능력함과 고집을 충분히 보아왔고, 의료개혁은커녕 의료 붕괴를 맞고 있다”면서 “앞만 보고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옆도 보고 뒤도 봐야 한다. 잘못된 방향이라면 멈춰 서는 것도 용기다”라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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