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 결단하고 ‘보수·재계’ 찾는 이재명…대권 기초 ‘차곡 차곡’

‘금투세 폐지’ 결단하고 ‘보수·재계’ 찾는 이재명…대권 기초 ‘차곡 차곡’

민주, 금투세 당론 ‘유예’ 아닌 ‘폐지’로 최종 결정
개미 투자자 영향 고려·정쟁 빌미 사전 차단 등 이유 들어
합리적·실용적 면모 강조해 ‘차기 대권’ 염두 둔 중도 외연 확장 행보
정치·경제·외교·종교계 인사 두루 만나며 보폭 넓혀

기사승인 2024-11-05 06:00:08
지난 7월 28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캠프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고 끝에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방침을 밝혔다. 당초 ‘유예’ 입장을 보인 이 대표가 ‘폐지’로 입장을 급선회한 것은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중도 외연 확장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최근 보수 원로를 연달아 만난 것에 이어 재계·종교계 인사와 만남을 가지며 연일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것이 맞겠지만 현재 주식 시장이 너무 어렵다”며 “아쉽지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기간 금투세 유예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표가 쏘아 올린 유예론으로 인해 당내에서는 시행, 보완·시행, 유예, 폐지 등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정부·여당의 금투세 폐지 압박 속 팽팽한 찬반 토론 끝에 민주당은 이 대표에게 공을 돌리며, ‘유예’에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이 대표가 ‘폐지’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금투세 시행이 국내 ‘개미 투자자’에 미칠 영향과 현재 이들의 부정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금투세에 대해 ‘재명세’라고 부르며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이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결단을 밝히며 “1500만 주식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윤덕 사무총장은 “금투세 폐지 동의는 민생을 위한 결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예나 보완 후 시행 등을 선택했을 경우 정부·여당에 공세 빌미만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정략적 판단도 있다. 이 대표는 “정부·여당이 정책을 갖고 야당을 공격하는 정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금투세 도입을 유예하거나 보완 후 시행하겠다고 하면 끊임없이 정쟁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금투세 폐지를 촉구해 왔다.

민주당이 11월을 ‘김건희 특검의 달’로 지정해 대정부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역공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한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여당은 금투세 폐지를 촉구해오지 않았나. 현재 증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투세를 밀어 붙이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며 “정무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쿠키뉴스 자료사진

‘금투세 폐지’ 꺼낸 李 중도확장 ‘합리적인 우클릭’ 전략


이 대표는 지난 9월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을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라고 칭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대표의 이번 결정은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합리적인 ‘우클릭’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최근 세제 정책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외교·종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계 인사를 만나며 외연 확장 행보에 나서고 있다. 그는 주한캐나다 대사, 주한호주 대사를 만나 양국 우호를 다지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오는 11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정책간담회도 실시하고 이번 주 중 불교계 유명 인사인 법륜 스님과 만남도 예정되어 있다.

그는 전날에 최태원 SK회장과 만나 AI 관련 기업 간담회에 참석했다. 지난달엔 보수 진영 책사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만난 것에 이어 지난 9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상돈 전 의원을 만났다. 보수 인사와 만남을 가지며 보수·중도층을 끌어안고, 친시장·친기업 면모를 부각해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다만 이 대표의 외연 확장 행보가 같은 진보 진영 내 이념 및 노선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조국혁신당, 정의당 등 야권은 이 대표의 금투세 폐지 동의 결정을 두고 “깊은 고민은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본 결정”이라며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서생적 문제 인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은, 상황이 어려우면 원칙을 파기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권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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