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이니 친한이니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왜 이렇게 됐나 싶어서 TV도 잘 안 봐.”
국민의힘 지지자인 50대 남성 김모씨가 한 말이다. 김씨는 당원 게시판 의혹을 놓고 여당 내 계파갈등이 격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근 국민의힘은 당원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그 가족의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이 올라왔다는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친윤계가 당무감사 등 진상 규명과 한 대표의 해명을 요구하자, 친한계가 반발하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위법이 있다면 당연히 철저히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논란의 핵심인 ‘가족 연루’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건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 대표가 직접 나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당내 압박에도 무대응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한 대표는 그간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을 해왔다. 기존과 달라진 방어적 태도에 친윤계 사이에선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친윤계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다. 급기야 김민전 최고위원은 한 대표와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 언쟁을 벌였다. 이후 한 대표는 취재진 앞에서 14분간 “당대표를 흔들고 끌어내려 보겠다는 이야기 아닌가”라며 작심발언에 나섰다. ‘한동훈 체제’를 흔들기 위해 당원게시판 논란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선 친윤계의 배후에 ‘용산’이 있다는 의중을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친한계 측은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을 거론하며 활로 모색에 나섰다. 친한계인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28일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당원 게시판 내분이 이어질 경우, 김건희 여사 특검 표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태도를 기존의 ‘절대 수용 불가’에서 ‘결론 유보’로 선회하는 듯한 모양새다. 한 대표 역시 같은 날 특검법 대응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혹에 관해 “제가 한 말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당내 계파갈등이 극에 달하자 추경호 원내대표는 “냉각기를 갖자”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그는 지난 28일에도 당직자들을 향해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도를 넘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특검법이 실제 가결될 경우 양측에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당 안팎에선 원내 의원들이 확전을 멈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이 이번 사태의 근간인 만큼, 내분 불씨는 남아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각종 정치 현안과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두고 수차례 대립각을 세워왔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후 갈등이 일단락된 듯 했지만, 일시적인 ‘휴전’ 상태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윤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22일 한동훈 대표가 현장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양측의 사이가 다시 싸늘해졌다’는 추측이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총선 이후 보수층은 일부 ‘디커플링’(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면서도 한 대표를 비판하는 층과 한 대표를 지지하지만 현 정권을 비토하는 층으로 양분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당원인 박모(61·여)씨는 “국민의힘이 분열 직전이다. 힘을 합쳐서 거대 야당에 대응해도 모자랄 판인데 안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당원인 60대 여성 임모씨도 “‘이런 식으로 어떻게 3년을 버티냐’라는 곡소리가 지지층 사이에서 분출하고 있다”며 “당심도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이 막장극을 언제까지 봐야하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여권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선 단일대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계속 이렇게 싸우다 보면 양측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며 “이젠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용산이 한 대표를 밀어내긴 쉽지 않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국민의힘은 2022년 이준석 전 대표 사퇴 사태 이후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면 지도부를 자동 해산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현재 한 대표는 지도부에 장동혁, 진종오 최고위원 2명을 우군으로 두고 있어 ‘한동훈 끌어내기’ 프로젝트가 현실화하기 어려운 구조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탄핵 칼날이 윤 대통령의 목을 겨누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대표가 끝나는 순간, 윤 대통령의 정치적 명운도 함께 끝날 가능성이 크다”라며 “윤 대통령이 대승적 관점에서 한 대표 끌어안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