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논의를 본격화한다. 국민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의 법적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율을 고려해 연령 상향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사회적 논의를 올해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지난해 노인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매년 1년씩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사실 법적으로 노인 연령을 명시한 규정은 없다.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될 때 경로우대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정하면서, 노인 연령도 굳어졌다. 이에 따라 기초연금, 국민연금(2033년 상향 조정), 노인장기요양보험, 경로우대제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복지 정책도 65세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법적 강제성이 없다보니 경우에 따라 60세 이상 혹은 55세를 기준으로 한 정부 사업도 많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보고, 고령자는 55세 이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노인복지주택 자격, 치매 검진 기준 나이는 60세 이상이다.
일하고 건강한 노인 증가, 복지 재정 부담 커져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의 배경에는 ‘신노년층’의 등장이 있다. 1세대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 세대가 은퇴하며 노인 세대로 진입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고소득, 고학력, 높은 건강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전 노인세대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통계상으로도 1981년 법 제정 당시 기대수명은 66세였지만, 2022년 82.7세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노인 실태조사, 윤영희 서울시의원이 의뢰한 위드리서치 여론조사 등 각종 조사에서도 ‘적어도 70세부터 노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7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노인이 늘어난 점도 노인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한 달간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7만2000명 증가한 674만900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60세 이상 취업자 비중(23.4%)도 50대 취업자(23.3%)를 처음 넘어서며 전체 연령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느는데, 일할 사람은 줄어들면서 각종 복지 재정 부담도 크게 불어나게 됐다. 노인 연령은 단순히 청장년과 노인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노후소득보장제도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회서비스 대상의 선정 기준이 된다. 노인 연령을 높이면, 복지 대상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노인 빈곤율·자살률 1위, 노후소득보장 정책 마련 선행돼야”
문제는 노인 연령이 높아지면, 취약계층이 복지 혜택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도 늦어져 노후소득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21년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인 무임승차제 등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 연령 기준의 조정은 열악한 노인의 경제·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전 세대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하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15일 쿠키뉴스에 “노인 연령만 올린다고 해서 초고령화 사회를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고 사무처장은 “당장 노인들 입장에선 노인 연령을 상향하면 ‘그간 받던 복지 서비스를 뺏겠다는 거냐’라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무르익기 위해선 노후 보장 측면에서 노후소득보장, 노인 인력 활용 방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노인 연령 상향과 함께 각종 고용·복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연령을 올리는 과정에서 모든 사회 복지제도의 연령을 바꾼다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면서 “제도별로 개별적 판단을 갖고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경우 노인 빈곤율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수급연령을 올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연령 상향 조정에 대해 논의를 한 지 30년이 넘었다.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뀐 만큼 이젠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라면서도 “노인 연령이 높아지면 복지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 연금 수급 나이 등과 함께 연동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