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모임에 항상 늦는다, 싫증을 쉽게 느낀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성인ADHD(과활동성 주의력 결핍장애) 자가진단 항목 일부다. 20~30대를 중심으로 성인ADHD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과연 자가진단 리스트만으로 성인 ADHD 진단을 할 수 있을까. 성격 유형 검사(MBTI) 특정 유형에서 발생 확률이 높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성인 ADHD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전문가에 직접 물었다.
한국의 ADHD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ADHD 환자수는 9만9488명이었다. 지난 2017년 5만3070명의 배에 달한다.
성인, 특히 20~30대 ADHD 환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대 남성 ADHD 환자는 2017년 3852명에서 2021년 1만2390명으로, 30대 남성 환자는 1034명에서 5307명으로 각각 3.2배, 5.1배 증가했다. 20대 여성 ADHD 환자는 1484명에서 9697명으로, 30대 환자는 438명에서 3852명으로 각각 6.5배, 8.7배에 달했다.
유전적 요인이 가장 커…제한된 시간 활용에 어려움
ADHD 원인은 대뇌피질 중 전두엽 앞부분인 전전두엽 발달 지연이다. △집중력과 인지 과정에서 상위 기능 조절 △부적절한 활동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기능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등에 문제가 발생한다.
성인 ADHD 환자에게서는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지난 2015년 발표한 ‘한국형 성인 ADHD평가척도 개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성인기 ADHD 환자들은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의 어려움, 좌절에 대한 조절 능력의 감소, 수면 장애, 자기 동기 부여의 어려움 등의 특징을 보였다.
너무 많이 말을 하거나 너무 빠르게 말을 해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갖기도 한다. 직업 유지가 어려울 수 있고, 도로에서의 운전 기술이 미숙한 경우가 있다. 또 일반 인구와 비교하였을 때 성인 ADHD 환자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무직, 이혼, 투옥의 위험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가진단 리스트 천차만별…다 믿어도 될까
온라인상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자가진단 리스트를 믿어도 되는 걸까. 전문가는 대상자 스스로 답하는 방식의 자가보고식 설문 도구에서 타당도와 유효도가 입증된 평가방식은 2가지라고 말한다.하나는 한국형 성인 ADHD 평가척도 ‘K-AARS(Korea Adult ADHD Rating Scale)’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개발한 한국형 성인 ADHD 평가척도로 총 73문항으로 구성됐다. 두번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축이 돼 개발한 성인 ADHD 진단 도구 ‘ASRS(Adult ADHD Self-Report Scale)’다. 총 18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자가보고식 설문도구는 성인ADHD를 진단하는 여러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유재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산화된 주의력 검사, 뇌파 검사, 전문가와의 임상 면담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을 한다”면서 “자가보고식 설문 도구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ENFP면 성인ADHD일 가능성 높다?…논문 보니
MBTI에서 분류한 16가지 성격 유형 중 ENFP에서 성인 ADHD가 많이 나타난다는 ‘가설’도 떠돈다.MBTI는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를 조합해 16가지로 성격을 나눈다. 가설이 제기된 배경은 ENFP 특성과 성인 ADHD 증상이 겹친다는 점 때문이다. ENFP는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다소 충동적이고, 한 가지 일을 끝내기도 전에 여러 가지를 벌리는 특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가설이 아예 과학적 근거가 없는 엉터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999년 미국심리학회에 실린 ‘MBTI 및 창의력 사고 검사(TTCT)를 사용한 성인 ADHD, 성격 유형 및 창의성 간의 관계’ 논문은 18세 이상 성인 11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논문은 MBTI와 ADHD간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시험자 중 직관(N)과 인식(P) 유형의 경우 ADHD와 유의한(p<.001) 상관관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MBTI로 모든 성격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ADHD 환자가 언뜻 계획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는 데 유리하다”면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신건강 관심 증가는 긍정적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ADHD, 공황장애, 우울증을 호소하고 극복하는 공인의 모습을 접하면서 정신의학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줄었다. 또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의료 현장에서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김의정 이대목동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병원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본인이 원해서 외래 방문하는 20~30대 청년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소아청소년기에 주로 ADHD 증상이 발현하는데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성인기에 들어서면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이 시기는 학업, 직업 등 영역에서 자기 주도하에 활발하게 활동할 때다. 집중력 결핍이나 실행 기능 어려움, 자기 관리 어려움 등 문제에 더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본인의 정신건강을 살피고 싶어하는 욕구가 늘어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 가지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학업, 취업, 내 집 마련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환율, 금리가 널을 뛰고 가장자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이들도 많다. 갈수록 ‘나는 잘될 수 있다’는 확신이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결국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