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살 유자녀입니다” 사각지대에 남겨진 아이들 [자, 살자②]

“저는 자살 유자녀입니다” 사각지대에 남겨진 아이들 [자, 살자②]

기사승인 2023-12-28 11:00:02
쿠키뉴스 자료사진

“아이들이 부모의 자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스펀지 역할의 제도가 없어요. 자원봉사자나 단체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 사정은 좀 나아요. 모르는 아이들은 손 놓는 거예요.”

김주선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본부장은 최근 쿠키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살 유족 지원 서비스가 있지만, 정보를 알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살 유자녀가 많다. 

부모 자살 이후 남겨진 아이들, ‘자살 유자녀’가 사회의 관심 밖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매년 5000명 이상인 국내 40~50대 자살자는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들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직결된다.

이두리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이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자살예방정책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년 1월부터 자살예방 상담전화가 ‘109’번으로 통합 운영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청소년을 위한 자살 유족 지원은 어디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자살 사망자수는 1만2252명, 자살유가족은 8만112명에 달한다. 자살 사망자 1명당 평균 유가족 6.5명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살 유족 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에 연락해 24시간 안에 유족에게 자살 유족 지원 서비스 제공 동의를 얻는다. 서비스에는 애도 상담과 자조모임, 정신겅강치료비(1인 기준 100만원) 지원 등 심리 영역부터 법률·행정처리 지원, 일시주거비, 특수청소, 학자금 등 사회경제 영역까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청소년 특성을 반영해 생애주기별로 정부가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는 없다. 대신 현재 공공기관인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민간기업과 어린이재단, 자살예방단체와 함께 자살 유자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지원이 없으면) 자살 유자녀는 자립하기 굉장히 어렵다”며 “아동양육시설의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처럼 자살 유자녀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어린이재단 등과 협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학교에서 자살예방교육을 마친 활동가를 따로 찾아와 “부모님이 자살했다”고 털어놓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생이 자살하면 학교에 보고되지만, 아이 부모가 자살하면 자동으로 보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청소년 유족은 발굴 자체가 쉽지 않다”며 “청소년은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학교에서도 아이의 부모가 사망했을 때 자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역 제한도 넘어야 할 과제다. 2019년 9월 시작된 원스톱 서비스는 현재 서울, 인천, 광주 등 9개 시도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전국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는 총 280곳에 불과하다. 정부는 내년 복지부 예산(508억원) 중 자살예방 상담전화 운영 확대에 16억9000만원을 늘렸을 뿐이다.

강원 태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 캠페인.

청소년 자살 유족, 맞춤 정책 필요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 유족에 대한 맞춤 정책 필요성에 공감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유가족 지원이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이 2018년 국회 자살예방포럼 이후로, 2019년부터 자살 유가족 원스톱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라며 “자살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센터를 만들었지만, (센터 수가 부족해) 많은 자살 유족 수에 비해 서비스받는 이들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양두석 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도 “자살 유자녀인 아이들은 생계가 큰 문제다. 신고가 들어오면 원스톱 서비스가 지자체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지역별로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모 자살 등으로 남겨진 아이들이 사회로 안전히 나갈 수 있도록 계속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상임이사는 “사고·자살 등으로 부모를 잃은 자녀들을 지원하는 일본 육영회 재단은 보상금을 유족에게 직접 주지 않고 재산이 갖고 가서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생활비와 학비를, 성인이 될 때 사회 정착금으로 준다. 남겨진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완전히 성장하는데 필요한 재정 지원이 거의 완벽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며 “한국은 유족 누군가에게 보상금이 가는 시스템인데, 관리가 되지 않거나 잘못 쓰이는 경우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일생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