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과실 인정”… ‘환자 의료사고 지원안’ 두고 설왕설래

“사과하면 과실 인정”… ‘환자 의료사고 지원안’ 두고 설왕설래

기사승인 2024-06-24 14:37:3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의료소비자연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2일 경실련 강당에서 ‘정부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관련 시민사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부가 환자의 의료사고 입증 부담을 덜기 위한 지원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의료계의 반발이 일고 있다. 제도는 의료사고가 날 경우 의료진이 사과와 함께 관련 설명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는 의사가 과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시민단체는 의료행위에 의한 사고인 만큼 당연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열린 보건복지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의 제3차 회의에서 나온 ‘환자 의료사고 구제 방안’에 대해 의사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3차 회의에서는 △의료사고 감정·조정제도의 혁신 방향 △의료진·환자 간 신뢰 형성 방안 △환자 대변인제 등을 논의했다.

논의된 구제 방안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위로와 도의적 차원의 사과, 의료사고 경위에 대한 충분한 설명 등을 제도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일부 의사들이 이 문구 등을 지목하며 ‘법적으로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의사들의 한 익명 커뮤니티에는 “사과하면 재판에 이용될 수밖에 없다”,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의무화시키는 것이 말이 되나”, “결국 필수의료(바이탈과) 진료를 보지 말라고 등 떠미는 제도” 등의 비판이 빗발쳤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A교수는 쿠키뉴스에 “과거 분만 사고에 대해 의료진이 도의적으로 보상액 일부를 부담해야 했던 ‘분만의료사고 보상금’ 제도는 과실이 없는 의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어 의료인들로 하여금 산부인과를 더욱 기피하게 만들었다”며 “결국 정부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해 보장재원 분담 규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산부인과에 이어 필수의료과까지 더 꺼리게 만들 모양”이라며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깨닫는 것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위원회가 내놓은 제도는 실상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환자들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마련됐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진이 특정 보험에 가입하면 필수의료 행위로 인해 발생한 중상해에 대해 환자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환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도 임의로 형을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응급의료·중증외상·중증소아·분만 등 송사 위험이 크고 난도가 높은 진료를 하는 필수의료과 의사들의 사법리스크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 필요성이 논의됐다.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들은 정부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추진과 관련해 의료인에 대한 특혜라며 제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공동의견서를 통해 “정부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계획을 즉시 철회하고 국회와 함께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의료인을 대상으로 형사 고소를 하지 않고 의료분쟁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적·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자·시민단체는 이번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 발표에 대해서도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의료진 본인의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도의적 사과는 물론이고, 설명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이를 의무화한다고 해서 의료사고를 입증해야 하는 환자들의 부담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는 불법행위인 대리수술도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하다 일어난 의료과실로 처벌하고 있다”라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 논의 이전에 의료사고에 대한 명확한 구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환자들이 형사 고소를 하는 이유는 유족을 만나주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사과하는 의료진의 태도 때문”이라며 “피해자와 유족이 울분을 해소하고 제대로 구제받을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안 대표는 “특례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경찰과 검찰이 수사 관행을 바꾸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지난 2월 초안이 공개된 이후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올해 안에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표한 바 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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