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 잠자는 교실 깨울 수 있을까 [기자수첩]

디지털 교과서, 잠자는 교실 깨울 수 있을까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4-07-10 06:00:02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D-127. 수능을 본 사람이라면 ‘수능 D-1nn’이 얼마나 큰 중압과 부담을 가져다주는 숫자인지 잘 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초중고 12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교실이 처한 현실은 조금 기괴하다. 잠자는 학생, 딴 짓하는 학생, 그냥 멍 때리는 학생. 현직 고3 교사 절반이(53%) ‘25명 학급에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묻는 조사에서 대부분(16~25명)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서 얻어갈 게 없다”고 한다. 공교육의 권위는 이렇게 떨어지고 있다. 킬러문항 배제에도, 사교육 카르텔 혁파에도 공교육의 매력은 오르지 않고 있는 게 대한민국 학교현장의 현실이다.

정부도 모르는 눈치는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발표하며 “잠자는 교실을 깨우겠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중위권 수준에 맞춘 기존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빠른 학습자’와 ‘느린 학습자’에게도 학습 흥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디지털 교과서가 수준별 학습 외에도 학생별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교사들의 맞춤 지도도 도울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철학과 방식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 교육은 미래를 이끌 인재를 찾고, 학생 한 명 한 명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이후 교육의 목표는 보편적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오는 2025년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전세계 디지털 교육 혁명의 ‘퍼스트 무버’(선도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를 바라보는 교육부의 시각은 장밋빛 전망에 가깝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보는 발상은 공교육의 권위가 왜 하락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잠자는 교실과 잠자는 학생을 만든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업이 다 아는 내용이라서”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서”로 정리‧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공교육에 집중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초중고 전 과정에서 교육의 목표는 대입과 수능으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학교 수업에서 수능과 관계없는 과목은 등한시 될 수밖에 없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한국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시사점은 바로 ‘질문하는 기술’이다. 이제 누가 더 잘 외우고, 누가 더 문제를 더 빨리, 더 잘 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판적‧창의적 사고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현재 수능은 사고력 측정보다는 암기, 키워드 찾기, 문제풀이에 가깝다. 평가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잠자는 교실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어나갈 새 인재를 발굴하기엔 현 수능제도는 시효를 다 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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