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정금마을 등 철거 예정지 르포] 도시 빈민의 재개발 悲歌

[동작동 정금마을 등 철거 예정지 르포] 도시 빈민의 재개발 悲歌

기사승인 2009-01-31 1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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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철거 보상금… 졸지에 노숙자·불우이웃 되는 거야”

1984년부터 서울 동작동 58의 1 정금마을에서 철물점을 운영해온 윤모(76·여)씨는 요즘 하루 하루가 가시밭길이다. 재건축이 확정되고 지난해 5월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650가구가 살던 정금마을은 대낮에도 인적을 찾기 힘든 유령도시가 됐다. 곳곳에서 폐가들이 늘어나지만 윤씨는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방 하나 딸린 가게 보증금 1000만원으로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떠나지 않은 50가구를 대상으로 장사를 해봤자 하루에 쥐는 돈은 1000원도 안 된다. 월세 50만원을 내지 못해 그나마 있던 보증금 1000만원까지 다 까먹고 있다.

윤씨는 "남은 보증금을 받아 봐야 시골밖에 갈 곳이 어디 있겠나. 서울에는 가난한 사람이 살면 안되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뉴스를 보니 미분양 아파트 이야기가 계속 나오던데, 왜 재건축해서 아파트를 또 짓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 참사'의 원인이 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서울 곳곳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재개발 사업은 건설업체와 개발업체에는 엄청난 차익을 안겨다 주는 '선물'인 반면 세입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괴물'이다. 세입자들은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 다른 달동네로 이사를 가고, 이마저도 힘들어지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다.

30일 정금마을에는 텅빈 집들, 깨진 유리창과 "주거 생존권 보장하라", "같이 죽자" 등 휘갈겨 쓴 현수막들만 바람에 나부꼈다. 마을 안에는 굳은 표정의 40∼50대 남자들이 폐가구로 불을 피워두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낮이라 불피우는 사람이라도 있지 밤이면 인적조차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금마을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정모(70)씨는 "지난 연말에는 불우이웃이라는 서글픈 인생이 돼 연탄 몇 장을 얻었다"고 허탈해 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내고 가게를 얻은 정씨는 "보증금 500만원 되돌려 받아서 어디로 가겠느냐"며 "노숙자가 되는 수밖에 더 있느냐"고 한탄했다.

다른 재개발 지역인 아현 3구역 주택 재개발 지역은 한창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재개발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 뒤 철거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현재 70% 이상 철거가 끝났고 6300여가구 중 10여가구만 남아 있다.

폐자재 더미가 된 주택들 사이에서 유재필(64)씨는 아직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 측과 보상비 문제를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장사가 안돼 속이 썩고 있지만 지금 보상비로는 어디 갈 곳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버스 기사일을 하고 있는 정재민(36)씨는 "보증금에다 쥐꼬리만한 보상비를 보태도 이 주변에서는 곰팡이가 핀 반지하 방밖에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뉴타운으로 지정된 재개발 지역은 26개 지구이고 면적은 2398만㎡에 이른다. 각종 도심 재개발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도시빈민들이 머무를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글·사진=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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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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