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이번 주말 극장가에 애니메이션 두 편이 관객맞이에 나선다.
아이들을 위한 무공해 영화 ‘작은 영웅 데스페로’(이하 ‘데스페로’)와 어른이 봐야 제격인 무협 액션 영화 ‘스트레인저:무황인담’(‘스트레인저’)이다. 두 편 모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마음을 충만하게 해준다는 점이 놓치기 아까운 매력이다.
‘데스페로’, 부모마음에 쏙 드는 영화
먼저 미국과 영국 합작 애니메이션인 ‘데스페로’는 흔히 봐오던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사뭇 다르다.
캐릭터와 배경을 그려나간 선과 색감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일방통행의 교훈과 ‘오래 오래 잘 살았다’는 식의 해피엔딩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극장에 데려갔다가, 어린 아이가 즐기기엔 적절치 않은 미국식 성인 유머와 지나친 대립 구도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새롭게 펼쳐진 애니메이션 세상 ‘눈길’
애니메이션 ‘데스페로’ 속에는 인간의 세상, 시궁쥐의 세상, 생쥐의 세상이 등장한다.
인간 세상은 왕과 공주가 사는 성으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익숙한 공간이다. 인간의 자투리 물건으로 만들어진 벽 뒤편의 생쥐 세상, 쓰레기와 해골들로 만들어진 지하 시궁쥐 세상은 ‘데스페로’가 새롭게 창조한 공간으로 낯설다.
하지만 허황되게 치장된 게 아니라 꽤 설득력 있게 만들어져 마치 현실처럼 다가오며 눈길을 붙든다. 두 가지 쥐 세상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그곳에 쓰인 인간의 물건과 부산물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데스페로와 로스큐로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결말
국가적 행사로 ‘스프의 날’을 즐길 만큼 스프를 사랑하는 도르 왕국. 바로 그 ‘스프의 날’, 자신을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시궁쥐 로스큐로가 왕비의 접시에 빠진다. 왕비는 충격으로 스프 접시에 코 박고 세상을 뜨고,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는 왕은 ‘스프 금지, 쥐 금지’를 명한다. 슬픔에 빠진 도르 왕국에는 비도 빛도 사라진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 영웅 데스페로가 태어나는데 인간이 아니라 생쥐다. 본래 작은 생쥐 중에서도 데스페로는 유달리 작다. 영화는 작은 데스페로가 영웅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활약을 따라간다.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슬픔을 가져온 로스큐로의 진심어린 사과, 그를 받아주기는커녕 모욕감을 주는 피 공주, 로스큐로의 변심과 복수 계획이 진행된다.
데스페로가 로스큐로의 조합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지 섣불리 상상해서는 안 된다. 스프에 관심을 보이는 생쥐가 등장한다고 요리하는 생쥐를 주인공으로 한 ‘라따뚜이’의 아류작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에피소드마다 담긴 메시지나 이야기 전개 방식이 일천하지 않다. 때로는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당신의 아이, 어떻게 키우고 계세요?
또 데스페로에게 사회의 ‘표준’이라며 용기를 벌하고 겁을 가르치는 모습은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를 어른의 틀에 가두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다.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아이에게는 무공해, 생각하며 관람하는 어른에게는 일침을 가하는 영화다.
자막으로 본다면 데스페로의 목소리는 ‘섹스 앤 더 시티’ 사라 제시카 파커의 남편 메튜 브로데릭, 로스큐로는 더스틴 호프만, 피 공주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여주인공 엠마 왓슨을 만날 수 있다. 한국어 더빙을 선택한다면 영어판에서는 시고니 위버가 맡았던 내레이션을 신애라의 목소리로 만날 수 있고, 그 외 출연진은 국내 정상급 성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로 즐길 수 있다.
‘스트레인저’, 실사보다 박진감 넘치는 검투 액션
‘스트레인저’는 이게 애니메이션인가 할 만큼 속도감 넘치는 검술 액션이 눈을 황홀케 하는 영화다.
제 아무리 무술에 뛰어난 배우나 대역을 쓴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다치지 않는 선에서 연출해야 하는 실사 영화에 비해, ‘스트레인저’는 손으로 그리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무한 액션을 시도한다.
다행히 ‘공각기동대’ 제작진의 재능과 섬세한 노력이 뒷받침 되면서 ‘그래봤자 가짜 그림일 뿐’이라는 인상을 지우고 리얼하게 검투를 즐기게 한다.
자신의 칼을 봉인한 무사 나나시 ‘매력적’
일본 영화 ‘스트레인저’에도 약한 자를 돕는 영웅이 등장하는데, 결코 먼저 나서지 않고 자신의 검기를 숨기며 살아가는 은둔형 무사다.
그의 칼과 칼집은 열리지 않도록 끈으로 단단히 묶어져 있다. 전쟁에 핑계 대고 서로의 이름도 이유도 모른 채 생명을 앗았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생명 중시의 생각이 배어있는 봉인이다. 그의 이름은 ‘나나시’, 이름이 없다는 뜻으로 무게감 있으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영웅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운둔자 나나시에게 우연찮게 찾아든 상처 입은 새가 있었으니 소년 코타로다. 소년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명나라 군사들. 불로불사를 희망하는 황제를 위해 멀리 일본까지 고귀한 피를 가지러 왔는데, 100년에 한 번 난다는 피는 바로 코타로의 것이다.
느와르 풍의 핏빛 액션을 즐겨라
명나라 무사의 선봉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용병 라로우다. 재미있는 것은 라로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코타로의 피가 아니라 싸워볼 만한 호적수를 만나는 것. 어찌나 잘 싸우는지 몸에 상처 한 번 난 적이 없다.
나나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싸우고픈 마음을 느꼈던 라우로의 갈증, 스스로 두려워 다시 풀고 싶지 않았던 나나시의 검기. 만만치 않은 두 무사의 맞대결과 함께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공각기동대’ 제작진이 선사하는 느와르 풍의 어두운 화면에 튀기는 핏빛 검투를 감상하다 보면 100분이 어느새 지나간다.
어지러운 세상, 당신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눈이 즐거웠던 관람 뒤 극장을 빠져나오라면 영화 ‘스트레인저’가 남긴 묵직한 인생관이 머릿속을 유영한다.
나나시와 라로우 뿐 아니라 코타로를 명나라에서 구해 일본으로 데려온 쇼안 스님, 이타토리를 비롯해 일본 진영의 무사들, 명나라 사신단의 인물 등 등장인물 모두의 ‘선택’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이냐고 화두를 던져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나는 경험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름 없는 무사 나나시의 목소리는 일본 그룹 TPKIO의 보컬이자 인기 배우인 나가세 토모야가 연기했다. 쇼안 스님은 ‘쉘 위 댄스’ ‘워터 보이즈’ ‘노다메 칸타빌레’ ‘20세기 소년’ ‘싸이보그 그녀’ ‘도쿄!’ 등 숱한 일본영화에서 만나온 감초배우 타케나가 나오토가 맡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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