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도…성지가 된 명동

마지막이라도…성지가 된 명동

기사승인 2009-02-20 00:50:01

[쿠키 사회]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을 보려는 조문 행렬로 19일 명동 일대는 ‘성지’가 됐다. 거대한 인간띠를 이룬 조문행렬은 명동성당, 삼일로, 지하철 명동역으로 굽이굽이 이어졌다. 추운 날씨에도 누구 하나 찡그리거나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다. 김 추기경의 평안함이 모두에게 전파되는 듯했다.

◇끝없는 조문행렬 속 입관식 거행=김 추기경의 입관 예절은 오후 5시에 시작됐다. 김 추기경은 주교 반지와 제의, 십자가만 갖고 입관됐다. 20일 장례가 끝난 뒤 세워질 추기경의 묘비에는 추기경의 사목 표어였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가 한글과 라틴어로 병기된다. 김 추기경이 사제가 될 때 서품성구로 삼았던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성경 말씀도 새겨질 예정이다.

조문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19일 오후 11시 현재 13만5000명의 조문객이 김 추기경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인천에서 온 김동근(59)씨는 4시간을 기다려서야 명동성당 어귀에 도착했다. 암 투병중인 그는 “점심도 못 먹고 줄을 서고 있지만 추기경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면 영광”이라며 “여기있는 모두가 추기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조문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온 정명혜(53·여)씨는 “몇초 정도 얼굴을 보는 것이지만 영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위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환했다.

◇명동 일대는 섬김의 작은 천국=조문객을 위해 소박한 배려를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남대문세무서 직원들은 18일부터 삼일로 고개에 테이블을 놓고 조문객에게 따뜻한 녹차를 제공했다. 업무 시간을 쪼개 나온 직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조문객에게 차를 건넸다. 삼일로 언덕에 자리잡은 ‘창고극장’ 직원들도 보리차를 끓여서 조문객을 대접했다. 정대경 극장 대표는 “이웃에게 단지 물 한잔 대접하는 것이지만 김 추기경이 기쁘게 봐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로 고개의 카페 ‘뜰안의 작은 행복’의 정면 유리창에는 ‘화장실 사용하셔도 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카페의 조한신 실장은 “고생하는 조문객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라며 “손님은 조금 덜 받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 인파를 바라보며 “추기경 선종 이후, 다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게 사는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성당도 자원 봉사자들의 섬김으로 ‘작은 천국’이 되고 있다. 개인택시 운전자 봉사단체 ‘가톨릭기사사도회’ 회원들은 추기경 선종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6시부터 성당 입구에서 교통 정리를 했다. 60세가 넘는 회원들은 추운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교통 안내를 했다.

명동성당 문화관 꼬레스홀에서 미사 참여자를 돕고 있는 정춘옥(56·여)씨는 “오전 8시부터 쉬지않고 정오까지 자원봉사한 뒤 2시간 잠깐 쉬고 다시 봉사 중”이라며 “바쁘지만 마음은 즐겁다”고 말했다. 추기경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사목 표어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을 통해 생생히 재현되고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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