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영국의 크레이그 그라임스는 1997년 나무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선 날, 그는 집으로 향하는 대신 친구와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생애 처음 휠체어를 타고 낯선 도시를 헤맨 그는 넓은 세상과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재활의 의욕을 되찾았다. 이후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13개국을 여행했다.
하지만 훗날 그가 ‘구원의 시간’이라고 기억하는 세계 여행이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특히 200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웠다.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입구의 호텔과 식당은 찾기 어려웠고 도로턱은 높기만 했다.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진정 노동이었다.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선사했던 첫 휠체어 여행 이후 12년. 그는 19일(현지시간) 드디어 꿈꿔오던 여행 사이트를 오픈했다. ‘장애인의 론리플래닛’을 표방한 장애인용 온라인 예약 사이트 ‘접근가능한 여행(www.accessible.travel)’이다.
바르셀로나와 그리스 아테네, 프랑스 파리 등 전 세계 8개 도시별로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과 교통수단, 관광지 정보 등을 제공하는 동시에 예약도 가능한 세계 최초의 장애인 전용 여행 사이트다. 각 시설별로 객실과 주차장 화장실 등의 입구 폭과 높이, 경사면 설치구조물 여부는 물론이고 침대와 세면대 높이, 샤워장의 지지대 설치 여부까지 꼼꼼히 소개했다.
‘장애인이 왜 여행을 해야 하냐’는 반문에 부딪칠 때마다 그라임스는 여행지에서 기뻐하던 장애인들을 떠올렸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전신마비 여성과 그라임스의 안내로 고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나카라과전쟁 상이군인 등이 그들이다.
장애인 여행 시장은 미국의 경우에만 한해 136억달러에 달하는, 도전해볼만한 틈새시장이기도 하다. 니카라과를 중심으로 중남미 상품 개발에 매진하는 그라임스는 매달 도시 한 곳씩 추가해 전 세계 모든 곳을 접근가능한 여행지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그는 19일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여행이 재활이라고 믿는다.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며 “더 많은 장애인들이 내가 경험한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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