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철새는 투명하거나 반사가 심한 유리창과 충돌해 숨지거나 풀숲이나 관목림에서 활동하는 야생 고양이에 ‘텃밭’을 내주고 생명을 빼앗기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전남 신안 홍도 철새연구센터에 따르면 2007년과 2008년 2년간 철새들의 사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건물 유리창 등 인공구조물에 부딪히거나 야생 고양이에게 잡아먹힌 철새가 60∼70%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굶어죽거나 이동 과정에서 탈진해 죽는 철새는 4∼7%에 그쳤다.
철새연구센터는 조사기간동안 주민 제보와 현장방문 등을 통해 사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니 2007년 홍도지역에서 숨진 철새 244마리 가운데 유리창 등과 충돌해 숨진 철새가 89마리(34.8%)로 가장 많았다.
건물이 밀집한 홍도 몽돌해수욕장 근처에서 유리창에 부딪혀 두개골이나 구강내 출혈, 부리와 날개파손 등으로 숨진 철새가 대부분이었다.
다음으로 들고양이의 먹이감이 된 철새가 55마리(22.5%)였고 굶어죽거나 탈진한 비율은 10마리(4%)에 머물렀다.
2007년 12월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한 탓인지 2008년에는 홍도지역에서 사체로 발견된 12목23과64종 315마리의 철새 가운데 기름오염에 의한 사망이 101마리(32.1%)로 가장 많았고 야생고양이에 의한 경우가 78마리(24.8%), 유리창 충돌이 51마리(16.2%)를 차지했다.
그동안 미국에서만 연간 최대 9억8000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충돌해 숨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적이 있으나 국내에서 이같은 집계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새연구센터 원일재 연구원은 “잘 닦여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이나 산 등 주변 풍경이 그대로 투영된 유리창이 새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며 “긴 여행중 날개를 접고 쉬다가 활동공간이 겹치는 야생 고양이들에게 희생당하는 새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새들과 대학생들이 공존하던 서울대에서도 철새들이 유리창과 충돌해 숨지는 사례가 최근 급증한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특히 법대 도서관 방향에 위치한 문화관 전시실의 대형 유리벽면이 철새들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 한몫을 하고 있다.
관악산과 도림천으로 둘러싸인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경우 10여년전까지 대학본부와 자연대 학생회관을 중심으로 둥지를 트는 새들이 무척 많았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인문대와 공대에도 새들이 서식했다.
그러나 5∼6년전부터 학교내부 노후건물의 개축과 신축이 붐을 이루고 대부분 외벽이 유리로 꾸며지면서 이곳에 충돌해 숨지는 새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최창용 박사는 “새들이 유리창과 충돌해 숨지는 사고를 조류와 항공기 충돌을 의미하는 항공용어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와 구분해 윈도우 스트라이크(Window Strike)라고 한다”며 “철새들의 이동이 한창이던 2005년 5월의 경우 3주일도 안되는 기간에 문화관 뒷편에서 숨진채로 발견된 새가 호랑지빠귀 16마리 소쩍새 4마리 등 30여마리나 됐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버드스트라이크 위원회에 따르면 1988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비행기와 조류의 충돌로 인한 인명피해가 무려 219명에 달한다. 신안=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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