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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반전·인권 운동의 상징인 가수 밥 딜런의 노래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g)’이 흐르고, 1960∼70년대 암울한 미국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것으로 영화 ‘왓치맨’(사진)은 시작된다. 아동 포르노, 마약, 폭력이 만연한 잿빛 미국에서 왓치맨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오래된 사진첩처럼 펼쳐진다.
법망을 벗어나 범죄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일종의 자경단인 ‘히어로’는 20세기 초반부터 활약해 왔지만 현재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에 의해 강제로 은퇴당한 상태다. 전직 히어로였던 코미디언이 살해당하자, 또 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은밀하게 사건을 수사하고, 살인 뒤에 국가 간의 전쟁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히어로조차 불완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폭력을 절제하지 못하거나, 성적 능력이 결핍되는 등 히어로의 모습은 일반인의 통념 속에 내재돼 있는, 절대적으로 선한 영웅과 거리가 멀다.
‘왓치맨’은 86년 발간된 동명의 그래픽 노블(소설 같은 구성을 지닌 만화)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 앨런 무어는 ‘씬시티’의 프랭크 밀러와 더불어 80년대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왓치맨’은 88년 팬 투표에 의해 수여되는 SF상인 휴고상을 수상했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선정 ‘1923년 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 베스트’에 포함되기도 했다.
영화는 가상의 역사를 전제로 깔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지금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풀어내는 대체문학은 SF 영화의 중요한 아이디어 원천이다. ‘왓치맨’이 묘사하는 80년대의 미국은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리처드 닉슨이 3선에 성공한 암울한 독재국가이며, 여전히 소비에트 연방과 냉전 중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영화에 풀어낸다. 과거의 리처드 닉슨과, 현재의 이라크 전쟁, 핵 전쟁으로 인해 불안해진 미래가 공존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 전쟁과 환경 파괴 등 영화는 철학적 주제들을 쏟아낸다. 다양한 사건, 암시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던 영화는 “소련과 미국이 이념을 버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공조하기로 했다”는 단순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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