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여성의 성적 주권과 성폭력, 매춘.”
지난 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 연단에 선 두 명의 아랍 여성들은 보수적 아랍세계에서는 금기로 통하는 단어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주인공은 바레인의 퍼스트레이디 쉐이카 사비카 알 칼리파와 이집트의 영부인 수잔 무바라크. 청중은 흰색 아랍 전통의상에 턱수염을 기른 아랍 세계의 실력자들이었다. 숨죽인 채 경청하던 보수적 무슬림 지도자들은 연설이 끝난 뒤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여성 인권 후진국으로 알려진 아랍세계에서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이 여권 신장을 위해 페미니스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8일 전했다. 마나마 회의는 각국의 영부인들이 보수적 아랍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벤트였다.
이번 국제회의를 주도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부인 수잔 여사(68)는 아랍 여권운동의 선구적 인물이다. 그가 2002년 결성한 아랍여성연맹은 최근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 등 15개 아랍국 퍼스트레이디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아랍 여권운동 내에서 태풍의 핵으로 등장했다. 수잔 여사는 “사람들은 ‘영부인들이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사회가 뭘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역할모델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2세대 여권 운동가로는 최근 최고여성위원회를 설립한 바레인의 사비카 왕비(60)가 떠오르고 있다. 4명의 부인을 두고 있는 하마드 국왕의 첫째 왕비인 사비카는 이혼과 여성 성기 절제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발언하며 개혁을 이끌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인 옥스퍼드리서치그룹(ORG)은 “서구 사회는 중동의 여권 신장과 이를 성취해낸 여성 지도자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서구가 정절벨트에서 피임을 논하기까지 800년이 걸렸다면 중동에서는 고작 10년이 걸렸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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