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특성화학교 대원중 가 보니… “기대 이상”

국제중 특성화학교 대원중 가 보니… “기대 이상”

기사승인 2009-04-28 15:04:01

[쿠키 사회] 기대 이상이었다고 할까. 서울 중곡4동 대원중학교 신입생들은 이미 영어 수업은 물론 수학과 과학에, 일종의 교양 과목인 국제이해 수업까지 영어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제2외국어인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각각 해당 언어로 배웠다. 원칙상 영어는 원어민 교사 혼자 가르치지만, 수학·과학 등은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가 함께 들어가 이중 언어(영어와 우리말)로 수업한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수업에서조차 우리말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국제중으로 첫 수업을 연 지 52일 만이었다.

지난해 9월 국제중 전환을 앞둔 대원중과 영훈중의 특성화 운영 계획안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는 기자는 지난 23일 그 중 한 곳인 대원중을 직접 찾았다. 2층 복도에서 마주친 김일형 교장(55)이 덥석 손을 잡아채더니 “내 설명엔 한계가 있다. 직접 보고 들으라”며 이 교실 저 교실로 이끌었다.

◇중1 수업 맞아?…한국어 줄이고 외국어 늘리고=“니 마이 션머(너 뭐 사니)? 워 스 뻔(난 공책)! 니 스 션머(너는 뭐)? 워 마이 슈(나는 책 산다).”

가장 먼저 찾은 교실에선 중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붉은색 바탕에 금색 실로 수놓인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은 중국인 교사 림지아즈(38·여)씨가 가르쳤다. 그는 칠판에 글자를 쓰고 한 단어 한 문장씩 짚어가면서 또박또박 읽어줬다. 임 교사가 “최용∼쥔, 최슈∼민”을 호명하자 두 학생은 태연하게 앞서 배운 문장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임 교사는 “헌∼ 하오(아주 좋아요)”라며 손뼉을 쳤다.

이 수업에선 모든 설명과 의사소통이 중국어로 이뤄졌지만 10여명의 학생은 다 알아드는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발음을 따라 했다. 이들은 모두 대원중에 입학해 처음 중국어를 배웠다. 이 학교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매주 2시간씩 편성·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대원외고 교무입학관리부장으로 있다가 올해 대원중으로 ‘스카우트’된 강신일(51) 교감은 “무엇보다 다들 어려서 흡수력이 좋다”며 “교육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실마다 뒷벽면은 전자식 잠금 장치가 달린 개인 사물함으로 메워져 있었다. 열쇠 대신 비밀번호를 눌러서 열고 닫는 사물함이다. 학교는 국제중으로 전환하면서 신입생 교실은 물론 2·3학년생 교실의 사물함까지 싹 바꿨다. 여기에 3000여만원이 들어갔다.

“이제 영어 수업을 보러 가자”고 김 교장은 재촉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헤드폰 끼고 수업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김 교장은 “요즘 누가 그렇게 하느냐”며 너털웃음을 쳤다.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은 불이 꺼져 어둑했다. 칠판 앞에 드리운 스크린(영사막)에 프로젝터(영사기)가 쏘는 내용이 비쳤다. 이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한 남학생이 ㄷ자형으로 둘러 앉은 나머지 14명 앞에서 미리 준비해온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다.

“First time, I’ll introduce about causes and symptoms, and first causes(우선 원인과 증상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원인은 )….”

자료도 영어였고 설명도 영어였다. 과학 수업인지 영어 수업인지 분간하지 못할 만큼 내용이 전문적이었고 어휘 수준은 높았다. 교장과 교감조차 놀라는 기색이었다. 헌칠한 원어민 교사 숀 코니그(Sean Koenig·34)씨는 학생들이 2∼3분짜리 발표를 마칠 때마다 “very good!”이라며 박수로 격려했다.

김 교장은 “실력 향상 속도를 상상하지 못할 정도다. 애들이 긍지도 있고 실력도 있으니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교감은 “이게 환경의 중요성”이라며 “일반 학교에선 영어 잘하는 학생도 혀를 굴리면 놀림 당할 까 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원어민 교사들의 역량을 높이 샀다. 코니그 교사는 미국 공립학교 중 최고 영재학교로 꼽히는 토머스제퍼슨 과학기술고를 졸업한 뒤 명문 주립대인 버지니아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또 다른 원어민 교사 폴 비티(Paul T. Beattie·23)씨는 고교 시절 시계 수학 경시대회에서 주 1등을 차지한 수재다. 그는 조지아주 에모리대학 아시아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건너왔다. 대원외고의 교원 채용 시스템을 통해 영입된 이들은 영어 외에도 각각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원어민 교감으로 부임한 휴 퀴글리(Hugh Quigley·47)씨는 아이비리그(미 동부 8개 명문 사립대) 중 하나인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국제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다음 찾은 수학 수업마저 영어 수업으로 착각할 뻔했다. “So A times 100 minus B percent over 100(그러니까 A 곱하기 100 빼기 B% 나누기 100이죠).” 이은영(24·여) 교사는 수학을 영어로 가르쳤다. 학생들은 교사의 물음에 앞다퉈 영어로 대답했다. 맨 뒷자리에 앉은 류영원(13)양이 손을 들고 우리말로 질문하자 이 교사는 “Could you say that again(다시 말해 주겠니)?”라며 영어 질문을 유도했다. ‘쯧쯧, 저 학생 어쩌나. 난처하겠군.’ 기자의 이런 염려가 끝나기도 전에 류양은 앞서 한 질문을 고스란히 영어로 바꿔 물었다. “원래 영어를 잘했느냐”는 질문에 류양은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는데 금방 적응되더라”고 말했다.

이들 아프리카반 32명 중 10명은 영어 설명을 다 알아듣긴 어렵다고 했다. 전혀 못 알아듣거나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는 학생은 없었다. 이 교사는 “영어 사용 비중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며 “아이들이 어휘 공부를 매일 숙제로 해 오는데다 수학은 어휘가 반복되는 과목이어서 알아듣기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국내 최초 해외 파견 교생 4명 중 1명으로, 고려대 수학교육과 4학년생이던 2007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초·중·고교에서 교생 실습을 마쳤다.

수학 수업이 이뤄진 교실은 1억원을 들여 만든 첨단 교육실이었다. 전자 칠판은 기본이고, 전 세계 학생과 실시간 화상회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 때문에 각 반이 서로 쓰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고 강 교감이 전했다.

◇일반중→국제중, 무엇이 달라졌나=대원중은 올해 국제중으로 특성화하면서 많은 부분에 변화를 줬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교사다. 원활한 영어 수업을 위해 교사 34명 중 영어교사 4명을 포함해 3분의 1을 교체했다.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수학·과학 교사도 새로 뽑았다. 모두 공개 채용 방식으로 선발했다. 특히 영어에는 100여명이 몰렸으며, 그 중엔 명문 학교의 현직 교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교감은 “(떨어뜨리기) 아까운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다들 자리만 있으면 뽑고 싶은 사람이었다”며 아쉬워했다.

교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학급과 교실 이름도 바꿨다. 1반, 2반 등 숫자를 붙여 부르던 5개 학급에 각각 아시아반과 유럽반 오세아니아반 아프리카반 아메리카반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또 과학실은 아인슈타인룸, 미술실은 피카소룸, 국제이해실은 반기문룸 등으로 바뀌었다.

대원중은 같은 재단인 대원외고와 연계하거나 대원외고생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입생에게 대원외고생을 붙여 공부와 학교 생활, 진로·진학 문제 등에서 조언(멘토링)을 얻도록 하고 있으며, 모의유엔총회와 모의법정 활동을 통해 서로 어울리도록 권장하고 있다. 지난 2월 대원외고를 졸업하면서 미국 하버드 대학 합격증을 거머쥔 김경돈(19)군은 오늘 9월 입학 전까지 대원중 영어집중과정(EIL) 최상위반에서 보조교사로 활동한다.

김 교장은 “대원외고생 도움을 안 받으면 엄청난 돈을 들여 사교육 기관에 기대야 한다”며 “실력 있는 외고 선배 덕에 학생들이 매우 흥미를 갖고 프로그램에 임한다”고 전했다.

수학, 과학, 국제이해 등 영어로 수업하는 과목은 교사들이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책은 펼치면 영락없는 영어 교재다. 과학 교재인 ‘Where Am I?’의 경우 표지를 제외한 105쪽 중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한 6쪽만이 한글로 씌어 있다. 기존 검정 교과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수학 교재 ‘Mathematics 7-A’(중1-1학기용)는 79쪽 중 교재를 소개하는 반 쪽만 한글로 적혀 있다. 국제이해 교재 ‘Many Peoples One World’는 50쪽 모두 영어로만 쓰여 있다. 이 책은 나라별 의식주와 문화·예술, 종교, 국제 정치와 경제 등을 아우른다.

이들 교재는 벌써 일부 학원으로 흘러들어가 강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는 이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묻겠다는 방침이다.

◇학부모 만족도 항목별 최고 91% 만족=대원중이 지난 8일 신입생 160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교생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11개 항목 중 품격(매너)교육에 대한 만족도(만족 이상)가 91.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만족 수준별로 매우 만족 40.2%, 만족 50.8%, 보통 8.3%, 불만 0.7%였다. ‘매우 불만’은 없었다.

이밖에 만족 이상 응답자의 비율은 생활지도(88.6%) 정규수업(82.3%) 영어·수학 진단평가(80.3%) 교육 활동(76.9%) 방과 후 학교(76.5%) 급식 문제(75.2%) 특별실 환경(69.7%) 교실 환경(69.4%) 집중체육(69.0%) 통학버스(60.1%) 순이었다.

학습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도가 높았다. 학부모들은 특히 제2외국어 수업, 이중언어 수업, 수준별 방과후 수업, 집중체육(승마·스쿼시·골프·수영), 영어 독서, 영어·수학 진단평가(매주 화요일 1교시) 등에 만족해 했다. 또 교사의 열정과 자기 주도 학습 방식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긴 통학버스 운행 경로, 과다한 과제물, 급식 질 등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운동 시간 추가 확보와 건물 내 실내화 착용 등을 제안했다.

대원중은 주요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만큼 학생의 영어 실력 향상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 겨울 개교 전부터 예비 신입생을 대상으로 텝스를 포함해 3차례 영어 능력 평가를 치렀다. 그 결과로 5명을 선발해 3주(지난 1월5∼24일)짜리 영어 캠프에 위탁 교육을 보냈다. 참가비는 1인당 230만원이었지만 학교의 요청으로 학생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됐다. 입학 후 해당 학생의 수준이 크게 올랐다고 담임 교사들은 전했다.

학교는 또 평가 성적이 낮은 27명을 대상으로 매주 10시간씩 방과 후 수업을 운영 중이다. 영어 8시간, 수학·과학 각 1시간씩을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에 나눠서 실시하고 있다. 방과 후 학교 수강에는 한 달에 3∼4만원 정도 든다. 강 교감은 “현재 진척 상황으로 보건대 27명 중 90%는 1학기 안에 구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충분히 따라갈 정도로 수준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대원중 교사와 학생에게 학업 성취도 향상은 새삼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국제중으로 바뀌기 전부터 성과를 내 왔기 때문이다. 학교에 따르면 현재 2·3학년 400여명 가운데 기초학력 부진학생은 1명도 없다. 3학년의 경우 신입생 시절 서울 전체 평균보다 14점 낮았으나 1년 뒤 서울 평균보다 0.2점 높아졌다. 2년이 지난 현재는 14점이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사들이 영어·수학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방과 후까지 학교에 붙들어 놓고 가르친 결과라고 학교 측은 분석했다.

대원중은 이르면 다음달 중순부터 성동교육청 관내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대원 쉐어링 캠프(Daewon Sharing Camp·가칭)를 열기로 했다. 국제중에 관심이 있는 초등 5·6학년생 20∼30명을 선발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하루 2시간씩 말하기·듣기 위주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1년 단위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프로그램은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 재학생이 함께 꾸려가며, 수강생에겐 수료증을 준다.

김 교장은 “대원중이 국제중으로 지정됐을 때 (일반) 중학교 하나 사라진다고 염려하는 분이 많았다”며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학교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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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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