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베레고부아 전 총리와 닮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佛 베레고부아 전 총리와 닮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기사승인 2009-05-24 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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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 1일. 프랑스인들은 난데없는 비보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던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총리가 권총 자살한 것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한달여 만이었다.

베레고부아 전 총리 인생은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 역정과 아주 흡사하다. 현대 정치사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도자가 흔치 않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성장과정과 정치 이념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상황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베레고부아 역시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국민들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지도자 반열에 오른 베레고부아를 자수성가형 관료의 표상으로 여겼다. 그는 10대 중반 때 철도 수리공이 됐고 노조지도자를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사회당에 입당해 좌파 정치인의 길을 갔다.

깨끗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던 베레고부아는 이런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직까지 올랐다. 재임 중 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깨끗한 정치를 표방했던 노 전 대통령과 일맥상통한다. 베레고부아도 금전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도덕성이 크게 훼손돼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점도 닮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금전 거래액은 100만프랑(당시 환율로 1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지방 출신인 그는 장관 재직시절 수도 파리에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친구로부터 돈을 빌렸다. 95년까지 갚겠다는 공증문서도 써줬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공증문서가 우파 성향의 예심판사(검찰) 손에 들어갔고,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다. 언론들은 그가 직책을 이용해 무이자로 돈을 빌렸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 때는 선거 기간이라 우파는 이 사건을 적극 이슈화했고 사회당은 93년 초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했다.

베레고부아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자괴감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5주 뒤 노동절을 택해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 프랑스 사회에서는 언론과 보수 정치권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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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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