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깊은 슬픔. 29일 서울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큰길은 비통함이 가득했다. ‘노무현’을 외치는 구호는 5분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소리를 계속 낼 수 없을 만큼 슬픔이 컸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풍선과 리본, 종이비행기로 노랗게 물든 길을 따라 국민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경찰관도 눈물=노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는 오후 1시쯤 세종교차로에 이르렀다.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잘 가세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사랑했습니다” 목메인 말들이 운구차를 향했다. 곱게 접은 노란색 종이 비행기가 운구차 지붕 위에 앉았다. 운구차는 사람 걸음보다도 늦은 속도로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고인이 가는 길을 시민들도 함께 따랐다. 일부 시민은 운구차에 손을 대보겠다며 뛰어나오다가 제지를 받았다.
경찰관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이들은 단정한 정복 차림으로 아침 일찍부터 폴리스라인을 지켰다. 구름인파에 오전 10시쯤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던 폴리스라인이 무너지면서 경찰들도 시민 속에 섞여 운구를 지켜봤다. 시민들은 자율적으로 길을 만들어 운구차가 지나가게 했다.
시민들은 가족 장례도 아닌데 검은 옷을 입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28도에 달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30도가 훨씬 넘었다. 그래도 손수건은 땀보다 눈물을 닦는데 더 많이 쓰였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와 달리 40, 50대가 자주 보였다. 미국 뉴욕에서 온 홍현숙(50·여)씨는 “월요일에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분의 마지막 길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휴가를 내고 시청 앞으로 달려왔다. 김민정(24·여)씨는 “마지막까지 지켜보기 위해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왔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서울 중심, 샛노랗게 물들다=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는 노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 일색이었다. 서울 태평로변 가로수를 따라 노란색 풍선 다발이 매달렸다. 풍선에는 노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졌고 ‘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장관 지지모임인 ‘시민광장’은 노란 풍선과 햇빛가리개 모자 수십만개를 준비해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개인적으로 노란색 스카프와 손수건을 준비한 사람들도 많았다. 두 갈래로 서 운구차를 맞은 만장 2000여개는 노랑, 검정, 빨강, 초록, 흰색 등 등 형형색색이었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의 선포로 시작됐다. 김 전 장관이 초혼식을 시작하자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이 입장했다.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에 이어 국립무용단의 진혼무가 펼쳐졌다. 안도현·김진경 시인이 추모시를 낭독했다. 사회를 맡은 도종환 시인은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났지만, 산산조각 난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위한 잔잔한 소망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소년소녀가장 출신 정시아 시인이 유서를 낭송했다. 이때 주변의 대형 화면에 노 전 대통령의 옛 사진들이 지나가면서 애통함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앞서 추모공연에서는 가수 양희은이 ‘상록수’를, 윤도현이 ‘너를 보내고’를, 안치환이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불렀다. 방송인 김제동은 사회를 보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명박 대통령 헌화 때 야유=참석자 수만명은 오후 2시쯤 노제가 끝나고 노 전 대통령 운구차를 줄지어 따라갔다. 서울역을 거쳐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사거리를 넘어 원효대교로 가는 길까지 인파가 천천히 움직였다. 시청 앞에서 남영역까지 약 3㎞를 걷는데 3시간이 걸렸다.
노제 참석자들은 인파에 가려 현장을 보지 못하자 도심 건물 전광판과 휴대전화 DMB 등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봤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다. 전광판에 이 대통령이 헌화하는 모습이 비쳐지자 거센 야유가 나왔다. 하지만 현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김아진 양진영 전웅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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