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 안철수, 반쪽짜리 감동

‘무릎팍도사’ 안철수, 반쪽짜리 감동

기사승인 2009-06-23 13:26:00


[쿠키 IT] 지난주 정보기술(IT) 업계 최고의 이슈는 단연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및 카이스트 석좌교수였다. MBC 인기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그가 들려준 주옥 같은 성공 스토리는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의사라는 안정된 진로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V3라는 국내 최초 PC백신을 국내외에 자리매김시킨 그의 용기와 추진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며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가 주요 포털사이트 급상승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까지 했다.

이날 안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많은 주목을 끌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한 해외 보안업체의 ‘안철수연구소 인수 시도’ 사례(1997년)였다. 당시 그는 월초마다 직원들 월급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1000만달러라는 거금의 인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들이 V3라는 국내 브랜드를 없애고 자신들의 제품을 국내 시장에 더 많이 팔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이 자명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쳤다. ‘보석같은 사람’ ‘진정한 애국자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등 인터넷을 달군 소감과 평가들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은 회사 운영이 어려웠음에도 달콤한 인수 제의를 뿌리친 그의 용기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을뿐, 국내 소프트웨어 사업자들이 왜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사업자가 어려워지는 데는 한 가지 이유만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 있는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문제는 안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IT 업계 종사자들이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토로하고 있는 부분이다. 힘들여 만들어도 돌아오는 건 ‘역시 소프트웨어로는 돈을 못 번다’는 체험에서 나오는 체념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무릎팍도사’ 방송에서 안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점은 안 교수처럼 용감한 사람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주범’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과 깨달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도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방송 후 블로그나 카페 등 그 어떤 게시물에도 이런 점을 지적하는 글을 찾아볼 수 없었고, 언론 역시 네티즌들의 클릭(조회 수) 유도에만 혈안이 돼 ‘TV프로그램 감상문 기사’만 쓰기에 바빴다. 기자 역시 감상문 기사보다 ‘더 많은 클릭’을 위해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취재해 기사를 작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23일 한국소프트웨어협회(SPC)가 발표한 조사결과 자료는 우리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협회에 따르면 정부의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파트 관리사무소, 영리 재단법인 등의 경우 소프트웨어 침해 수준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SPC에서 전국 609개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대상으로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을 증빙한 곳은 83곳(13.8%)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526곳(86.2%)은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아파트 관리사무소라는 제한된 영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에 인색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방송을 보고 “감동했다”며 극찬을 보내면서도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라는 물음에는 입과 귀를 닫아버리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대단하다”며 찬사를 보내지만 그렇게 대단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때 부리나케 불법 복제물 사이트부터 접속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안 교수의 성공 스토리는 감동 스토리지만 소프트웨어 하나 만들기 위해 연일 밤을 새가며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원들의 삶은 그들만의 스토리인가?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제2, 제3의 안철수가 될 수도 있었던 전도 유망한 젊은 인재들을 좌절시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방송을 보고 그렇게 감동받았다면 이제는 감동을 넘어 더욱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이상해요. 지하철, 버스 한 번 탈 때도 아무말 없이 꼬박꼬박 돈 내면서 소프트웨어 돈 주고 사라고 하면 왜 표정이 확 바뀌죠?”

얼마 전 한 소프트웨어 업체 이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뭔데 그래◀ 검찰의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어떻게 보십니까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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