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한국산재의료원 산하 인천중앙병원에서 기계설비사로 일했던 김선호(28)씨에게 2009년 7월1일은 긴 하루였다. 지난 30일 해고 통보를 받은 김씨는 이제 실업자다. 3년6개월간 땀 흘리던 일터였지만 해고 통지는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한마디였다. 그 순간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김씨는 이날 길에서 하루를 고스란히 보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을 향해 소리 치는 것뿐이었다. 오전 10시30분 서울 영등포2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병원 기계실에서 분주하게 일할 시간이다.
이어 국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어색하지만 팔도 흔들어 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며 목소리도 높였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산재의료원 본부를 찾아가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의 구호는 허공에서 흩어졌다.
경북 영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김씨에게 인천중앙병원은 첫 직장이었다. 김씨는 "첫 직장이니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욕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며 기다리면 정규직이 될 줄 알았는데…."라며 눈물을 삼켰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잘릴지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더기로 해고된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어머니는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김씨는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다. 함께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산재의료원 산하 11개 병원·의료센터의 28명이다. 이 중 40대 가장도 있다. 재취업이 힘들 수밖에 없는 나이다. 2년 계약 완료를 앞두고 김씨는 한 달 전부터 회사에 끊임없이 정규직 전환 여부를 물었다. 자신의 앞날을 아는 곳은 병원뿐이었다. 병원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비정규직법 시행 하루 전인 30일에는 초조한 마음에 뉴스만 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국회는 김씨의 간절한 바람을 끝내 외면했다.
1999년부터 KBS 시청자서비스팀에서 일한 홍미라(35·여)씨도 30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KBS는 그녀의 청춘을 쏟아부은 곳이다. 홍씨는 "1일 오전까지 출입증으로 자유롭게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오후부터 KBS의 어느 문도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토지공사는 이날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145명을 해고했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법에 따라 계약이 끝났음을 통보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택공사도 30일자로 계약기간 2년이 된 직원 31명에게 계약 만료 사실을 통보했다. 도로공사도 비정규직 20여명과 계약을 끝냈다. 노동부는 전국 5개 사업장에서 고용기간이 2년째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 중 28명이 해고됐다고 말했지만 지방노동청에 보고되지 않은 해고자는 노동부 집계에서 누락됐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거리에 나앉은 비정규직이 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국회를 찾아가는 정도다. 함께 해고된 동료들과 끝까지 싸우겠다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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