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31일(현지시간) 오후 6시45분 영국 켄트주 도버항. 입에 긴 빨대를 물고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한 여성이 탄 요트가 항구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팔과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생화학자 출신의 힐러리 리스터(37·사진)가 1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도버항에 도착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일 보도했다. 켄트주 캔터베리 출신의 리스터는 활달한 소녀였으나 11세때 퇴행성 질환으로 목 이하 전신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됐을 때는 머리와 눈 입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2003년 요트를 알게 되면서 항해의 꿈을 키웠고, 주변의 만류 속에서도 특수 설계된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아르테미스 20’이라고 명명된 요트는 빨대에 숨을 한 모금 들이쉬거나 빨아들여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민감한 압력 스위치로 연결된 두 개의 빨대로 방향과 리스터가 앉은 의자의 높이 기울기 등을 조정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남서부 콘월주를 출발한 그녀는 영국 최서단 랜즈 엔드와 아이리시해, 칼레도니아 운하를 거쳐 도버항에 도착했다. 많은 이들이 항해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항해 도중 호흡 질환으로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마침내 일주를 마친 그녀는 “몸 안에 갇혀버리는 고통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항해가 내 삶을 구했다”고 말했다. 리스터는 항해 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바다 한 가운데서 고래 떼를 만난 일을 꼽았다. 그녀는 “몸집이 10m가 넘는 고래들이 물을 뿜으며 호흡하는 장면이 장관이었다. 두 마리는 돌고래처럼 뛰어오르고 한 마리는 보트 아래로 돌아다니는 광경은 정말 황홀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트 뒤를 따라온 지원팀과 자신의 자선단체 ‘힐러리 드림 트러스트’를 후원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번 항해로 모은 3만파운드(약 6000만원)의 기금은 리스터처럼 요트 항해를 원하는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쓰일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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